샌프란시스코아이제이션, 시애틀라이제이션, 덴버라이제이션…. 이 단어들은 미국 주요 도시의 이름과 임차료 상승으로 원주민이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는 현상을 뜻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합성한 신조어다. 대기업이 들어와 도시에 젊은 고소득자가 갑자기 급증해 부동산값 폭등, 교통난 등으로 도시 생태계가 파괴되는 현상을 뜻한다. 지방 정부와 주민들이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2019년 당신의 도시가 샌프란시스코 뉴욕 시애틀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NYT는 “교통 체증이 심해지고 집값이 치솟으면 고임금 일자리 유치가 지역 경제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대표적인 곳이 실리콘밸리가 자리 잡은 샌프란시스코 일대다. NYT는 “정보기술(IT) 기업이 창출한 부(富)와 극도의 빈곤이 공존하는 곳”이라며 “도심에서 밀려난 교사와 소방관이 많다”고 전했다.
아마존 본사가 있는 시애틀도 사정은 비슷하다. ‘시애틀라이제이션’이라는 신조어는 IT 기업 덕분에 인구 유입이 늘었지만 집값이 크게 올라 도시 모습을 크게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미 인터넷매체 바이스는 아마존 제2본사를 유치한 뉴욕 롱아일랜드시티가 ‘스테로이드를 맞은 시애틀’이 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스테로이드는 근육을 단기간에 키워주는 약물이다. 뉴욕은 이미 집값, 교통문제가 심각한데 아마존까지 들어오면 부작용이 시애틀보다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아마존의 뉴욕 입성이 ‘제2의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창업이 활발한 도시도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갈 수는 없다. 인구 70만 명의 도시인 콜로라도주 덴버는 적은 자본으로 창업하려는 기업인들이 선호하는 도시다. 2017년 NYT가 아마존 제2본사가 들어서기에 가장 적합한 도시로 꼽을 정도로 창업에 우호적인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창업 희망자들이 몰리면서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고 ‘덴버라이제이션’이란 단어까지 생겼다. 지난해 12월 한 사립학교는 임차료가 너무 올라 현재 입주해 있던 건물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며 언론에 호소하기도 했다. 이 학교의 툰타 아세가 행정국장은 “우리는 25년 동안 커뮤니티에서 봉사해 왔다”며 “퇴거 통보를 내리는 것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전형적인 사례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캔자스주 캔자스시티는 공개적으로 ‘덴버라이제이션’에 대해 우려하기 시작했다. 캔자스주 지역 언론 ‘캔자스시티스타’는 지난해 12월 초 ‘캔자스시티의 덴버라이제이션을 막자’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적절한 주거 정책이 뒤따르지 않는 경제 발전은 문제”라며 “도시를 ‘힙스터’(트렌드에 민감한 젊은이) 친화적으로 만들기 전에 장기 거주자를 보호하는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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