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영철, 트럼프와 예상 뛰어넘은 ‘2시간’ 면담…공개 사진 분위기 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0일 16시 11분


워싱턴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면담이 이뤄진 18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 오피스. ‘결단의 책상’에 앉은 트럼프 대통령이 앞에 일렬로 앉은 북측 대표단을 향해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동안 북측 인사들은 두 손을 무릎에 모으거나 트럼프 대통령 쪽으로 몸을 기울인 채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가운데 의자에 앉은 김영철만 비스듬히 앉아 다소 떨떠름한 표정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바라보는 묘한 구도 속에 이날 면담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절반만 달성된 북한의 요구


댄 스카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 국장이 19일 트위터에 공개한 사진은 김영철과 트럼프 대통령의 면담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영철 일행에 미국 측 입장과 회담 방향, 북한이 취해야 할 비핵화 조치 등을 길게 언급하며 북한을 압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영철의 면담이 예정됐던 시간은 18일 오후 12시15분. 30분 뒤인 12시45분에는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의 면담이 잡혀 있어 길어도 30분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예상이었다. 이 면담 일정을 뒤로 미루면서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회담에 대한 미국의 입장과 방향, 북한의 비핵화 조치 필요성 등을 역설하며 북한을 강하게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의 정확한 날짜와 장소 공개까지 확정해달라고 요구하는 김영철의 설득도 한동안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영철과의 면담 후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을 2월 말로 발표한 것은 멈춰서 있던 비핵화 협상 시계를 다시 돌아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의 장소 등 최종 발표는 미룬 채 스웨덴에서 진행되는 비핵화 실무회담으로 사실상 공을 넘겼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당시 이미 한 달 전에 날짜와 장소를 트위터에 전격 공개했던 것과는 다른 움직임이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생산적인 만남이었다”면서도 “대북제재가 유지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 역시 눈여겨볼 부분. “아직 좁혀야 할 이견 차가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스웨덴 실무회담이 ‘열쇠’

앞으로의 관건은 스웨덴에서 이뤄질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간 실무협상에서 얼마나 진전된 결과를 도출하느냐 하는 것. 외교소식통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반출 혹은 생산 중단 정도로는 미국이 제재완화를 해줄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미국의 실무 협상팀이 개성공단 관련 제재 면제는 사실상 제재 무력화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확실한 비핵화 조치를 내놓지 않으면 이것 역시 쉽지 않다”고 전했다. 비핵화 실무협상이 시작됐지만 앞으로도 난항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김영철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고위급 회담이 끝난 뒤 로이터 통신이 “양측의 이견이 좁혀졌다는 징후는 없었다”고 전하는 등 워싱턴에는 아직도 회의론이 강하다. 워싱턴포스트는 “김정은이 잘 속아 넘어가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겉만 번지르르한 가짜 금(fool‘s gold)을 주고 양보를 얻어내려 할 가능성이 있다”며 ’정상회담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전문가들도 실질적인 진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2차 정상회담이 지난해 싱가포르 회담 때처럼 (준비 없이) 이뤄질 경우 북한의 손에서 놀아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두 정상은 이제 본격적인 회담에 들어가 구체적인 진전 상황과 비핵화 프레임, 일정 등을 도출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1차 정상회담을 ’멀리건‘(골프 샷이 잘못된 경우 이를 무효로 하고 새로 치는 것)으로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김정은과의 두 번째 경기에서는 공을 러프에 빠뜨리거나 재차 압도당할 여유는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정은특파원 light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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