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 위해 대학 중퇴하고 삽화가로 일하다가 CIA 첩보원으로 발탁
타고난 변장술로 “영화 촬영한다” 핑계로 이란 잠입해 미국인 인질들 구출해
CIA 최고 영예 훈장 받고 은퇴…“얼굴 변장보다 중요한건 행동 변장”
제85회 아카데미 작품상 각색상 편집상 수상작인 영화 ‘아르고’(2012년) 속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인 ‘변장과 위조의 천재 첩보원’ 앤토니오 조셉 멘데즈가 19일(현지 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프레데릭의 한 요양원에서 79세로 별세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함께 일한 동료였던 아내 조나는 “남편이 파킨슨병을 앓아 왔다”고 말했다.
학비를 낼 형편이 안돼 콜로라도대를 중퇴하고 삽화가로 일하던 멘데즈는 1965년 CIA에 들어가 1980년 1월 28일 이란 테헤란에서 호메이니 혁명정부의 인질로 잡혀 있던 미 국무부 직원 6명을 구출해냈다.
구출 작전을 위해 멘데즈는 영화 ‘혹성탈출’과 ‘스타트렉’ 예술감독을 맡았던 친구 존 체임버스, 훗날 ‘ET’에 참여한 특수분장전문가 밥 시델을 영입해 로스앤젤레스에 ‘스튜디오 식스’라는 가짜 영화제작사를 차렸다. 이들은 ‘아르고’라는 공상과학(SF) 영화를 제작한다고 버라이어티, 할리우드리포터 등 영화전문지에 광고까지 냈다.
멘데즈는 아일랜드 출신의 캐나다인 영화제작자 ‘케빈 코스타 하르킨스’로 위장하고 1980년 1월 25일 “영화 촬영을 한다”는 명목으로 테헤란에 들어갔다. CIA 요원의 도움으로 만난 인질 6명에게 가짜 신상 시나리오를 사흘간 습득시킨 구출 팀은 28일 새벽 테헤란 메흐라바드 국제공항에서 변장한 인질들과 함께 스위스항공 여객기에 탑승해 취리히로 조용히 탈출했다.
배우 벤 애플랙이 연출과 주연을 맡은 영화 ‘아르고’에 나온 자동차 추격전 등 액션 장면은 1980년 구출 작전 이야기를 담은 멘데즈의 회고록 ‘변장의 대가(The Master of Disguise)’를 영화로 각색하며 상상으로 더해진 장면이다.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 직후 미국인 66명이 444일간 이란에 억류되는 동안 지미 카터 행정부는 여러 차례 구조 작전을 펼쳤지만 투입된 요원 여러 명이 희생되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기상천외한 ‘변장 구출 작전’ 성공 후 백악관에서 카터 대통령을 만나 CIA 최고 영예인 ‘인텔리전스 스타’ 훈장을 받은 멘데즈는 1990년 2성장군급 지위로 은퇴했다. 1997년 CIA 창설 50년을 기념해 선정된 ‘50인의 CIA 선구자들’ 명단에도 포함됐다.
흑인 첩보원과 아시아인 외교관을 백인 사업가로 변장시키기도 했던 멘데즈는 “외모를 변장시키는 건 위장술의 가장 쉬운 부분이다. 더 중요한 것은, 위조해 만들어낸 인격이 오랜 세월 살아온 배경에 어울리는 언행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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