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여권으로 브렉시트 대처”… 영국인들, 이중국적 신청 러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1일 03시 00분


아일랜드-伊, 뿌리 증명하면 시민권
작년 英 20만명 아일랜드 여권 노크… 이탈리아 시민권 신청 10배 급증
상당기간 거주뒤 귀화신청 가능… 일정액 투자로 ‘골든 비자’ 따기도

누구도 ‘노딜 브렉시트(협정 없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의 대혼돈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브렉시트 기한인 3월 29일까지 영국-EU 간 합의를 이끌 묘수가 나오지 않는다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가장 혼란스러운 이들은 EU 국가에 살고 있는 영국 시민(약 130만 명)이다. 이들은 브렉시트 이행기가 적용되더라도 2020년 12월까지 약 1년 안에 거처를 떠나야 할지 모르는 운명이다. 당장 EU 관련 기관에서 일하는 영국인들은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다.

브렉시트발 혼란에 대처하려는 영국인들에게 ‘제2의 여권’은 보험과도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BBC에 따르면 브렉시트 투표 직후인 2017년에만 EU 국가 내에 이중국적을 얻은 영국인(1만3141명) 규모는 2016년(5056명)보다 159% 급증했다. 2015년 1826명에 불과했던 신청자 규모와 비교해 보면 브렉시트 효과가 두드러진다. 이런 영국인들이 ‘버건디색(EU국) 여권’을 유지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 조상 덕 보는 금수저


‘제2의 여권’을 얻는 가장 싸고 쉬운 방법은 조상을 잘 만난 사례다. 아일랜드, 이탈리아는 증조부까지 출생 기록, 시민권 기록 등으로 뿌리만 증명하면 누구나 시민권자로 받아준다. 브렉시트 투표 후 이미 아일랜드와 이탈리아의 시민권 신청은 각각 2배, 10배 증가했다.

이 때문에 영국에서는 ‘아일랜드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이들이 ‘금수저’로 떠오르고 있다. 아일랜드 외교부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에서만 약 20만 명이 새로 아일랜드 여권을 신청했다. 아일랜드 상원 브렉시트 위원회는 영국 인구의 최소 10%가 이 루트로 아일랜드 여권을 받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독일, 오스트리아도 히틀러 정권의 피해자 자손에게 시민권을 준다. 특히 영국인들의 이중시민권 신청이 가장 많았던 독일에서는 2015년 43명에 그쳤던 피해자 자손 자격 신청자가 지난해 1667명으로 급증했다.

○ 시간이 걸리는 합법적 접근 또는 돈으로 해결

조상 덕을 보지 못한 이들은 제2의 여권을 얻으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아일랜드에 귀화를 신청하려면 최근 9년 중 5년 현지 거주가 필수다. 프랑스는 5년 거주는 물론이고 프랑스어 능통, 사회통합 증명, 시민권 테스트를 요구한다. 독일도 거주 기간 8년, 시민권 테스트, 사회통합 교육 이수를 조건으로 두고 있다. 해당 국가 배우자와 결혼하면 조금 쉬워지기는 하지만 여전히 엄격한 조건(아일랜드는 결혼기간 3년, 독일은 3년 이상 거주 및 결혼기간 2년 등)을 충족해야 한다.

돈으로 해결하는 ‘골든 비자’ 얻기도 있다. 하지만 매우 비싸다. 일정 규모 이상의 외국인직접투자(FDI)를 하면 얻을 수 있는 이 여권은 1만3500유로(약 1722만 원·크로아티아)부터 500만 유로(약 63억7730만 원·룩셈부르크 슬로베니아)에 이른다. 하지만 이 루트도 점점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골든 비자가 돈세탁, 세금 탈루 등에 이용되는 사례가 늘면서 EU 집행위는 최근 골든 비자 발급을 엄격하게 하라고 권고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 파리=동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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