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협상 카드가 구체화되고 있다. 평화협정 논의는 물론 영변 핵시설을 포함한 전역의 우라늄 농축시설 폐기 약속 이행과 검증을 강조하면서도 그간 터부시했던 대북제재 완화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은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미국의 목표는 가능한 한 ‘가장 먼 길(as far down the road)’을 가는 것”이라면서 ‘빅딜’ 추진을 시사했다.
○ 제재 완화 용의 밝힌 美
폴란드를 방문 중인 폼페이오 장관은 13, 14일(현지 시간) CBS, PBS, 폭스뉴스 등 미국 언론과의 연이은 인터뷰에서 북핵 협상 구상을 쏟아냈다. 특히 “대북제재 완화를 대가로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게 우리의 전적인 목표(full intention)”라면서 대북제재 완화를 협상 카드로 처음으로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이 최우선 과제로 요구하고 있는 제재 완화를 놓고 비핵화 담판을 벌일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폼페이오 장관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약속 이행과 검증을 조건으로 달았다. 그는 “(제재 완화에 대한) 결정은 김 위원장에게 달렸다”며 “지금은 김 위원장이 비핵화 약속을 이행할 시간이다. 우리는 그것을 검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김 위원장의 ‘약속’은 지난해 10월 방북 당시 언급했다고 알려진 영변 핵시설과 북한 전역의 플루토늄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 시설 폐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어 “김 위원장이 비핵화 약속을 거듭 말해왔고 우리는 ‘신뢰하지만 검증하라(trust but verify)’고 했다. 그렇게 할 때까지 경제제재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재 완화는 영변 핵시설 폐기와 ‘그 이상’의 조치는 물론 포괄적인 신고와 사찰 허용 등을 통해 비핵화에 대한 검증이 선결돼야 가능함을 다시 각인시킨 셈이다.
그럼에도 대북제재 완화 가능성 발언은 이전보다 유연해진 미국의 협상 태도를 반영한다. 정부 관계자는 확대해석을 경계하면서도 “결국 유의미한 회담 성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대화 여건을 마련해 보겠다는 것”이라며 “북한이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면 불가능한 건 없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당장 화답할지는 미지수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의 평양 실무협상에서도 이번 회담에서 대북제재 완화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비핵화 조치를 이행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평화체제 가능성 내비치며 ‘빅딜’ 압박
폼페이오 장관은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 논의 가능성도 언급했다.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하노이 합의에서) 공식 종전선언(formal ending of the Korean War)의 비중은 얼마나 되나”라는 질문에 “비핵화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북한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미-폴란드 외교장관회담 직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어떻게 군사적 위험을 줄여야 한반도에 평화와 안보를 가져올 수 있는지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그동안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가 완료돼야 평화협정 체결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가운데 종전선언을 넘어 평화협정 논의 방침을 밝힌 것은 하노이 회담에서 비핵화 로드맵에 합의하는 ‘빅딜’을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미 측의 잇따른 북핵 협상카드 공개는 조만간 열릴 2차 북-미 실무협상의 예고편으로 풀이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실무협상팀은 하루 이틀 후에 아시아로 다시 파견돼 싱가포르 회담에서 합의된 모든 사안에 대해 대화를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는 15일 국회 초청 간담회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핵탄두와 탄도미사일을 언제 어떻게 폐기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미국에 요구할 상응조치로 대북제재 완화와 함께 불가침 협약 등 군사적 보장을 요구할 수 있다며 “북한이 미국과 군사 동맹은 못 해도 군사적 협력 관계를 맺자고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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