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여동생 타계…“뱁새가 황새 쫓다 오래 살아”

  • 뉴시스
  • 입력 2019년 2월 18일 01시 53분


미국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여동생으로 망명 폴란드 왕자의 왕자비였던 리 라지윌이 15일 맨해튼 자택에서 85세로타계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타임스는 부, 사회적 지위 및 야심에 관한 성향에서 언니 재키 못지 않았던 리 라지윌(Lee Radziwill)이 출세와 성공에서도 언니를 따라잡으려고 무척 노력했다고 장문의 부음 기사로 말했다.

왕자비 타이틀과 우아한 상류층 사교계 중심에 만족하지 않고 배우, 실내 장식가 및 작가의 길을 도전했으나 고인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중 한 명의 그림자 안에 살아야 하는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형제간 경쟁심을 끝내 버리지 않았던 만큼 고통이 더 컸다고 신문은 보았다.

4살 위였고 항상 잘 나가던 언니 재클린 부비에(처녀명)는 25년 전인 1994년 타계했다.

1953년 스무 살 때 부자 출판업자와 결혼했던 리는 이혼 1년 후인 1959년 무너진 폴란드 왕조의 왕자로 런던에 망명한 라지윌 왕자와 결혼해 명색이나마 프린세스, 왕자비가 되었다. 왕자는 부동산업에 성공했고 스무살 연상이었다. 언니 재키는 이미 6년 전 젊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과 결혼했다. 1951년 유럽 여러 도시를 같이 여행했던 자매는 재키가 1961년 퍼스트 레이디가 된 뒤 한층 친해졌으나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직후 사이가 벌어졌다.

그리스 선박왕 아리스토틀 오나시스 때문이라고 한다. 왕자비였던 리가 먼저 오나시스와 친했는데 재클린이 뺏어간 형국이 되었다. 케네디가 암살되기 석달 전 재키가 세째 아이를 조기출산 후 하룻만에 잃자 여동생이 남자친구 오나시스의 호화 요트에 언니를 데리고 가 지중해를 유람한 것이 화근이었다. 5년 후 재키는 오나시스 부인이 되었다.

재키는 유서에서 “사랑하는” 리에게는 “생전에 많이 베풀었다”면서 유산 리스트 중 하나도 주지 않고 대신 리의 자녀 두 명에게 몇 가지를 물려주었다.

뉴욕 타임스는 부음 기사 (사전) 작성을 위해 리와 짧은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는데 이때 리가 왕자비였던 시절 나돌던 오나시스와의 염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또 죽은 언니와의 관계에 대해 “어떤 섭섭함이나 마음에 맺힌 안타까움도 없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리는 언니와 사이가 틀어진 후 독자적으로 이름을 떨쳐보려고 영화배우, 탤런트 및 저술을 시도했지만 혹평 내지 유야무야에 그쳤다. 1974년 왕자와 이혼해 왕자비 타이틀을 반납했던 그녀는 1988년 영화감독 허버트 로스와 세 번째 결혼했다. 2001년 로스가 사망하자 두 자녀와 프린세스 타이틀을 주었던 라지윌 성으로 다시 돌아왔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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