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가족까지 동원 불법 계좌 개설…교묘해진 北 제재 회피 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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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3월 13일 15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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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등록 블록체인 플랫폼으로 설립 절차를 밟고 있는 ‘마린 체인(Marine Chain)’의 배후에 최소 1명 이상의 북한인이 있다.”

유엔의 한 회원국은 2018년 10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에 수상한 블록체인 회사 ‘마린체인’의 존재를 통보했다. 이 회원국은 “이 플랫폼이 북한 정권을 위한 자금 조달 수단과 선박 소유주를 감춰 선박 운송 제재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북제재위는 마린체인의 대북제재 위반 혐의를 조사했다. 대북제재위는 12일(현지시간) 공개한 연례보고서에서 더 교묘해지고 대담해지고 있는 북한의 제재 회피와 외화벌이 수법을 공개했다.

● 2번 공격으로 260억 챙긴 북 사이버공격 대책 필요

제재위는 보고서에서 “북한 정찰총국이 외국 금융기관이나 암호화폐거래소의 자금을 불법적으로 빼오는 사이버공격을 이용해 금융 제재를 회피하고 외화벌이에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해커들이 2018년 5월 칠레 은행을 해킹해 1000만 달러(약 113억원)를 빼돌리고, 같은 해 8월 인도의 코스모스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 대한 사이버공격으로 1350만 달러(약 153억 원)를 빼내 홍콩의 북한 관련 회사 계좌로 이체한 사건도 공개했다.

암호화폐는 정부 규제 밖에 있으며 추적이 어렵고 여러 번 돈세탁이 가능해 북한의 제재 회피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한 평가에 따르면 북한은 2017년 1월부터 2018년 9월까지 아시아에서 최소 5차례에 걸쳐 가상화폐거래소를 해킹해 5억7100만 달러(약 6467억 원)를 빼돌렸다”고 밝혔다. 제재위는 “안보리가 향후 대북 금융제재 조치를 입안할 때 북한의 사이버공격을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 외교관 가족까지 동원한 금융 제재 회피 기승

제재위는 “금융제재가 가장 이행 실적이 열악하고 적극적인 제재 회피가 이뤄지는 분야”라며 단천상업은행 등 북한의 해외 금융기관 대표 30명 이상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정찰총국은 유럽연합(EU) 국가에서 폐쇄된 계좌의 자금을 아시아의 금융기관 계좌로 옮겼다. 계좌만 폐쇄되고 자금을 동결하지 않은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북한 외교관들은 여러 국가에서 자신의 영문 이름을 살짝 바꾸거나 아내, 아들의 명의로 불법 계좌를 개설하고 위장 여권을 이용해 각종 밀수출 등에 여전히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재위는 이를 막기 위해 회원국에 은행 계좌 폐쇄 이후 자금 동결, 북한 외교관 거래 은행 한 곳으로 제한, 북한 외교관 가족들 명단 금융기관에 제공, 회원국간 정보 공유 등을 권고했다.

● 보드카 벤츠 롤스로이스 사치품 구입 경로 추적

대북제재위는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등장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용차 등 메르세데스 벤츠 리무진과 롤스로이스 팬텀, 렉서스 LX 570 등의 입수 경위도 조사하고 있다. 2018년 10월 7일 평양에서 등장한 롤스로이스 팬텀 리무진은 ‘팬텀 익스텐디드 휠베이스 시리즈2’의 7세대 버전으로 2012년부터 2017년 2월 영국 굿우드공장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제재 위반이지만 해당 차량의 차대 번호 등을 확인하지 못해 입수 경위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싱가포르 당국은 제재위의 문의에 “차대와 엔진 번호를 요구했지만 북한 관리들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거절했다”고 회신했다. 2018년 7월 네덜란드 세관 당국은 북한으로 향하는 벨라루스 원산지 보드카를 압류했다. 보드카는 사치품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대상이다. 보드카의 행선지는 북한에 메르세데스 벤츠 리무진을 보낸 것으로 의심을 받고 있는 중국의 한 회사였다.

● 교묘해진 해상 밀수입에 어업권 판매까지

제재위는 “북한의 선박 간 불법 환적이 범위나 규모, 정교함이 확대됐다”면서 50척 이상의 관련 선박과 160개 관련 회사의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남포항을 “수사한 불법 활동의 허브”로 지목했다. 해상 선박에서 남포항 터미널로 연료를 옮기기 위해 ‘수중송유관(underwater pipeline)’까지 이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불법 환적 선박들은 해상에서 중국의 실시간 메시전인 위챗을 이용해 중국 위안화 지폐의 마지막 네 자리 숫자를 사진으로 찍어 전송해 서로를 확인하는 치밀한 수법을 사용했다.

북한은 외화벌이를 위해 대북제재를 위반해 중국 어선 등에 대한 어업면허권까지 몰래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북제재위는 2개 회원국의 조사 결과 2018년 1~11월 북한이 발급한 어업면허권을 소지하고 있던 15척 이상의 중국 어선을 조사했다고 밝혔다. 한 회원국의 조사에서는 북한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이 200척에 이르며, 어업면허료는 한 달에 5만 위안(약 843만원)에 이른다는 증언도 나왔다.

제재위 연례보고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북한의 불법 무기거래도 반복됐다. 제재위는 27개국이 북한과 불법무기 거래, 군사협력 등 대북 제재위반 여부를 조사받고 있다고 밝혔다. 재재위는 또 “유엔기관과 인도주의 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인도주의 프로그램이 북한에서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경험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는 내용도 공개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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