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북한? 평양 지하철에는 ‘스마트폰 좀비’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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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3월 31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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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대학 석사 과정 호주인 학생 가디언 기고문
“패스트푸드·스마트폰·성형으로 옮겨가는 과도기 국가”

북한에서 공부 중인 호주 학생 알렉 시글리(왼쪽). (출처=통일투어 홈페이지 갈무리) © 뉴스1
북한에서 공부 중인 호주 학생 알렉 시글리(왼쪽). (출처=통일투어 홈페이지 갈무리) © 뉴스1
“북한은 과도기에 있다. 식당은 서울에서도 어색하지 않을 패션을 한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성형수술을 한 게 분명해 보이는 청년들도 보인다. 평양 지하철은 게임이나 영화, 뉴스를 보는 ‘휴대폰 좀비’로 가득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이 31일(현지시간) 북한에서 공부 중인 호주인 학생 알렉 시글리가 쓴 글을 게재했다. ‘북한에 사는 유일한 호주인’이라고 자신을 밝힌 그는 “북한은 고립에서 패스트푸드, 스마트폰 그리고 성형으로 옮겨가는 과도기 국가”라고 말했다.

시글리는 “많은 사람들은 서양인으로서 핵무기, (열악한) 인권 기록, 엄격한 군국주의 사회로 알려진 북한에 발을 들여놓는 생각을 꺼릴 것이다. 그리고 아마 젊은 호주인이 20대 2년을 평양 김일성 대학에서 공부하느라 포기한다는 말을 들으면 다소 충격받을지도 모르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중국학자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시절부터 일본과 중국 문화에 매료됐다고 한다. 이어 고등학교 시절 러시아 혁명을 공부하며 사회주의에 관심을 뒀고, 중국 유학 중 북한 학생들과 같은 기숙사에서 교류하며 자연스럽게 북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북한 학생들은 그들의 국가 지도자가 그려진 배지를 달고 다녔고 북한 국기 스티커를 문 앞에 붙여뒀다. 그러나 정작 이들과 얘기했을 때에는 보통 ‘세뇌받은’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받아 호기심을 가지게 됐다고 시글리는 설명했다.

그는 북한의 건축, 패션부터 북한인들이 세계를 보는 관점까지 북한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여행업체를 세워 북한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작년 4월 평양 김일성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오직 3명뿐인 서양학생 중 1명이다.

학생비자를 갖고 있는 그는 평양 거의 모든 시설에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다. 북한인들과의 교류는 가끔 제한되지만 동행인 없이 원하는 곳에서 쇼핑하고 식사하며 북한 시내를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다.

시글리는 “나는 내 경험이 ‘외국인으로서’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동시에 평양 주민들이 어떻게 살고, 일하고, 노는지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얻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북한은 한마디로 과도기다.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경제 자유화라는 정부 정책의 영향을 받아 소비층이 작게나마 증가하고 있다.

‘외식’은 이러한 소비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징후. 시글리는 “내가 방문한 한 식당은 주말 점심이면 상하이나 서울에서도 어색하지 않을 옷차림을 한 사람들로 항상 꽉 찬다”며 “성형수술을 받은 것 같은 젊은 사람들도 목격했다”고 말했다.

불고기부터 비빔밥까지 다양한 한식 음식점이 많고, 회전초밥이나 정통 중국식당, 종업원이 “KFC와 똑같다”고 말하는 패스트푸드점도 있다.

쇼핑을 하러 가면 하리보 젤리부터 뉴질랜드산 소고기, 아디다스 스포츠 의류, 도브 바디워시 등 다양한 수입품을 고를 수 있다. 현지 생산품 품질도 갈수록 나아지고 있다. 몇 년 전에는 모든 종이가 회색에다 거칠었지만 지금은 하얀 종이 공책이 가득하다고 전했다.

북한 정부는 기술 사용 확대도 장려하고 있다. 비록 현지인들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지만 자체 내부 네트워크는 발전 중이다.

시글리는 “평양 지하철은 항상 게임이나 영화, 뉴스를 바라보는 ‘휴대폰 좀비’로 가득하다”며 “내가 만난 사람 중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유일한 사람은 2000년식 노키아 스타일 휴대폰을 사용하는 73세 문학이론 교수가 전부”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겪은 가장 통찰력이 뛰어난 경험은 다양한 지역 주민들과의 대화”라고 강조했다.

시글리가 만난 한 택시기사는 호주가 인기 있는 여행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기사는 호주가 한국 전쟁에서 ‘미국 제국주의자들’을 지원했다는 것을 안다면서 그래도 시글리가 평양에 사는 많은 외국인들 중 처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글리는 기숙사에서 영어를 전공하는 북한 학생과 4개월간 룸메이트로 지냈다. 열렬한 축구 팬으로 네이마르와 메시를 좋아했던 북한인 룸메이트는 여러 면에서 (타국의) 20대 초반의 전형적인 학생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룸메이트는 국제 정세에 관심이 많았고 언젠가는 ‘통일된 한국 외교부’에서 일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만 다른 점은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이 보는 군 퍼레이드에서 대학을 대표했을 때를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으로 기억하는 것이었다. 시글리에게 호주는 일당제 국가냐고 묻기도 했다.

시글리는 룸메이트가 기숙사를 나가면서 연락을 하지 못하게 됐다. 북한에서 외국인의 휴대폰 번호는 별도의 네트워크에서 관리되며, 외국인은 특별한 이유 없이 현지인과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글리는 “작별 인사는 감정적이었다”며 “위안이라면, 호주인과 북한인이 4개월 동안 행복하게 한 방을 나눠쓸 수 있다는 사실은 더 나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단 것이다. 우리는 잘 지낼 수 있다”고 말했다.

‘통일 투어’라는 북한 여행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시글리는 트위터에서도 영어와 한국어 등으로 다양한 북한 모습을 전하고 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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