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에 도착한 10일(현지시간) 미 의회에서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상대로 대북정책에 대한 강도 높은 질의와 추궁이 이어졌다. 2020년 회계연도 예산 청문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이슈에 대한 송곳 질문이 이어지면서 폼페이오 장관은 답변에 진땀을 빼야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청문회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핵심 결의 등 제재는 북한의 비핵화 검증이 완료될 때까지 유지돼야 한다”며 한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시점에 ‘제재 유지’ 원칙을 재확인했다.
그는 에드 마키 의원이 대북제재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강하게 비판하자 “북한 경제는 올해 위축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강한 어조에 잠시 멈칫하던 마키 의원이 “북한경제가 위축된다고 하더라도 김정은의 핵포기를 받아낼 만큼 충분하지는 않다”고 지적하자 “평양 외곽을 들여다보면 그들(북한 사람들)은 제재가 매우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불법 유류환적이 증가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궁이 이어지자 “불량정권(rouge state)은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아셔야 한다”면서 “의원님의 미국 정부는 파트너 국가들과 협력해 제재를 성실하게 이행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받아쳤다.
다만 그는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완성할 때까지 어떤 제재도 해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코리 가드너 의원의 질문에 “약간의 여지(a little space)를 두고 싶다”고 답변했다. “그렇게(제재 예외) 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여겨지는 특정 조항들이 있다”며 그 예로 비자 관련 조항을 언급했다. 구호단체 관계자들의 방북허가 관련 조항을 언급한 것으로 보이지만, 폼페이오 장관이 구체적인 추가 설명을 내놓지는 않았다.
폼페이오 장관의 이 답변은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북한과의 협상에서 제재 문제에 유연성을 발휘할 여지를 열어놓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11일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미(對美) 메시지가 나오기 직전인 시점인 만큼 북한의 비핵화 결단을 촉구하는 메시지로도 풀이된다.
실제 폼페이오 장관은 전날 데이비드 비슬리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을 만나 대북 인도적 지원문제를 협의했다. 아동과 어머니, 재해 피해지역의 주민들을 상대로 한 대북 영양지원 문제가 논의됐다는 게 국무부의 설명이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같은 경협 재개를 위한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의미라기보다 최근 재무부 제재 철회 건에서 봤듯이 앞으로 추가 제재로 압박 수위를 더 놓이지는 않겠다는 수준의 발언”이라고 해석했다.
대북제재의 완화에 대한 워싱턴의 분위기는 여전히 강경하다. 대북제재의 일부 면제 혹은 완화가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되는 정부의 ‘조기 수확(early harvest)’이나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충분한 수준의 합의)’에 대해서도 대다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부정적이다.
박정현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이날 헤리티지재단에서 열린 전문가 토론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혹시라도 그 제안을 받는다고 하면 놀랄 만한 일이 될 것”이라고 일축했다. 스캇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도 “향후 협상을 위한 양보는 (미국이 아닌) 북한이 해야 하는 것”이라며 “이번에는 조기수확 같은 제안이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나이너 선임연구원은 “한국은 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 측의 입장을 편드는 것이 될 수 있는 제안 대신 북핵 협상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정확히 이해하고, 평양을 설득할 수 있는 합치된 의견을 조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이정은특파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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