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중동에서 가장 제대로 된 자유선거 제도를 갖추고 있는 나라로 꼽힌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이스라엘에선 정당 간 치열한 경쟁이 있고, 국민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직접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다. 투표 결과 득표율이 3.25% 이상인 정당이 전원 비례대표로 선발되는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의 120개 의석을 나눠 갖게 된다.
왕실, 특정 정치인(주로 독재자), 군부가 권력을 독점하는 대다수 중동 나라와는 확실히 구별되는 정치체제다. 성일광 건국대 중동연구소 연구원(한국이스라엘학회장)은 “이스라엘의 정치, 사상, 선거의 자유는 많은 중동 국가 국민이 부러워한다”며 “이스라엘인 중에는 (주변국에 대한) 자신들의 체제 우수성을 표현할 때 자유선거를 강조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4월 9일(현지시각) 실시된 이스라엘 총선은 나라 안팎에서 적잖은 논란을 일으켰다. 합법적인 선거였지만, 이스라엘처럼 자유로운 선거 제도를 지닌 다른 나라에서는 예상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 결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우파 성향의 리쿠드당은 120석 가운데 35석을 얻었다. 이스라엘군 참모총장 출신인 베니 간츠가 이끄는 중도연합 ‘블루 앤드 화이트’도 35석을 차지했다. 이스라엘 정계에선 리쿠드당이 샤스당(8석)과 토라유대주의당(8석) 같은 우파 성향의 정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며 절반을 넘는 65석을 확보하리란 전망이 많다. 사실상 네타냐후가 5선에 성공한 것이다. 이 경우 네타냐후는 올해 7월 초대 총리인 다비드 벤구리온(13년 5개월간 재임)을 제치고 최장 기간(1996년 6월~1999년 7월, 2009년 3월~현재) 재임한 총리로 등극하게 된다.
안보 이슈가 부패 혐의 압도
문제는 네타냐후가 뇌물수수와 배임 등 3건의 부정부패 관련 범죄 혐의를 받고 있고, 이스라엘 검찰이 기소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 현직 총리가 단순 의혹을 넘어 검찰이 기소를 주장할 정도로 범죄 혐의가 심각한데도 총선에서 승리했다는 것에 관심이 모아진다. 대통령과 그 측근이 국정농단과 비리 혐의로 탄핵이 이뤄지고, 전국적으로 시위가 벌어졌던 한국과 비교해도 무척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스라엘 사회도 정치인의 비리에 민감한 편이다. 네타냐후 직전 총리를 지낸 에후드 올메르트(2006년 4월~2009년 3월 재임)는 예루살렘 시장(1993~2003) 시절 주택 개발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16년 2월 구속됐고, 그다음 해 7월 가석방됐다. 고(故) 아리엘 샤론 전 총리(2001년 3월~2006년 4월 재임)는 외무장관 시절(1998년 10월~1999년 6월) 그리스 섬 휴양지 개발사업을 벌이던 부동산업자 다비드 아펠에게 돈을 받은 혐의로 2004년 검찰 조사를 받았다. 샤론은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되지는 않았지만 지지율은 급락했다. 결국 그는 2006년 1월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총리직에서 내려왔다.
이런 이스라엘에서 유독 네타냐후만 부정부패 혐의에도 건재한 것을 두고 “네타냐후의 안보 제일주의가 빛을 제대로 발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네타냐후는 재임 중 가자지구 봉쇄(반이스라엘 성향이 강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중심 활동 지역)를 중심으로 한 강경한 대(對)팔레스타인 정책을 펼쳐왔다. 또 △팔레스타인 지역 내 유대인 정착촌 확장 △시리아 내 이란군 관련 시설 선제공격 △예루살렘에 대한 미국의 이스라엘 수도 인정 및 대사관 이전 △골란고원에 대한 미국의 이스라엘 주권 인정 등 이스라엘 안보의 숙원 과제들을 풀었다. 카타르 도하에 거주하는 한 팔레스타인인은 “우파뿐 아니라 중도 성향의 이스라엘인도 자국 안보를 핵심 이슈로 여긴다”며 “네타냐후는 다양한 안보 관련 성과로 ‘이스라엘의 보호자’와 ‘안보 문제 해결사’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네타냐후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도 지지를 이끌어낸 요인으로 꼽힌다. 그는 이번 총선 직전에도 트럼프, 푸틴과 각각 정상회담을 가지며 외교 역량을 뽐냈다. 이합 마하르메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연구원은 “네타냐후는 자신이 초강대국 대통령과도 긴밀히 협력할 수 있는 리더라는 점을 과시하며 표심을 자극했다”며 “지난해 10월 이스라엘 총리로는 22년 만에 오만을 방문해 아랍권과 대규모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도 ‘네타냐후는 아랍 외교도 잘한다’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진보야당의 몰락과 선거법 문제
이스라엘 사회에서 꾸준히 진행돼온 우경화 움직임이 네타냐후의 연임을 가능케 한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하마스의 가자지구 장악’이 이스라엘 사회의 전반적인 우경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많다. 2005년 샤론 전 총리는 팔레스타인 측과 요르단강 서안지구 관련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자 가자지구에선 이스라엘군과 정착촌을 철수시켰다. 그러나 하마스는 2006년 총선에서 승리한 뒤 이듬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가자지구에서 몰아냈고, 이스라엘을 상대로 로켓과 박격포 공격을 앞세운 강경 투쟁에 들어갔다. 2014년 7~8월에는 이스라엘과 50일간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사회에선 ‘양보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잘못하면 요르단강 서안지구도 가자지구처럼 될 수 있다’ ‘평화협상은 무의미하다’는 인식이 급속히 확산됐다.
리쿠드당과 라이벌 관계였고 총리를 5명이나 배출한 중도 좌파 성향을 가진 노동당의 몰락도 네타냐후에게 반사이익을 가져다줬다. 이번 총선에서 노동당은 6석을 얻는 데 그쳤다. 직전 총선에 비해 13석이나 줄어든 결과다.
노동당의 이런 몰락은 의제 제시 역량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다른 당과 협력 전략도 뚜렷하지 않다. 에후드 바락 전 총리(1999년 7월~ 2001년 3월 재임) 뒤로는 ‘카리스마 있는 정치인’을 배출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선거 뒤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는 “노동당의 몰락은 진보적 시온주의가 존재의 위기를 맞았음을 보여준다”며 “노동당은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들어내야지 네타냐후를 대체하겠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스라엘 선거법이 현직 총리의 비리에 대해 너무 관대하는 비판도 나온다. 성 연구원은 “검찰 기소가 확실시될 만큼 비리 혐의가 분명한 총리가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것에 대해 이스라엘 내에서도 ‘너무 초법적이다’라는 비난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세형_ 현재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카타르 도하에 있는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에서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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