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복구 둘러싼 갑론을박 만만치 않아
과거 복원물 어느 정도 인정할지가 쟁점
원형복구 주장에 佛장관 ‘교조주의’ 일침
원형보존 진리로 믿는 우리에게 시사점
옛것도 ‘이 시대의 정신’ 반영 노력해야
노트르담 대성당에 화재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11년 전 숭례문 화재를 지켜보며 온 국민이 발을 동동 구르던 기억이 아직 저만치 있어서 더욱 그렇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삼킬 듯 이글거리는 불길 속에 첨탑이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그저 바라만 보아야 했던 프랑스 사람들의 심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숭례문 화재와 어찌 그리 닮은꼴인지 이번 화재가 남의 나라 일 같지 않다. 첨탑이 불에 타 무너지는 등 상당한 부분이 훼손됐지만 노트르담 대성당의 주요 구조부와 상당수의 유물을 구할 수 있었다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어쩌겠는가! 이제 복구를 고민해야 한다. 복구를 위해서는 많은 논쟁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철학의 나라 프랑스이니 복구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만만치 않을 듯하다.
우선 관심이 가는 쟁점은 19세기 중반 복원한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할지에 관한 부분이다. 당시 폐허가 되다시피 했던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원을 담당해 일약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사람은 프랑스 건축가 외젠 비올레르뒤크다. 그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철저히 연구하고 분석한 다음 원래의 모습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구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그는 프랑스 대혁명으로 피해를 입은 것과 그 이전에 복원한 것을 수리하고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한 요소들을 추가했다. 이번에 쓰러진 첨탑이 그의 작품이다. 비올레르뒤크는 옛 건축물을 복원하는 것은 원래대로 수리하거나 다시 짓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존재한 적이 없었던 이상적이고 완결된 상태로 다시 세우는 것이라고 후일 자신의 책에 썼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무너진 첨탑을 복원하는 데 국제공모를 통해 창의적인 계획안을 채택하겠다고 밝혔다. 이 시대에 걸맞은 디자인과 공법을 적용하는 것이 역사에 대한 책무라는 것이다. 원형 복구를 주장하며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프랑스 문화장관은 복구에 대한 논쟁은 환영한다면서도 어떤 것이 불변의 진리라고 믿는 교조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놓았다. 문화재라면 무조건 ‘원형 보존’을 만고의 진리로 믿고 있는 우리에게는 가짜뉴스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그러나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을 살펴보면 이러한 이 나라 정부의 결정이 이상스러울 것도 없다. 1853∼1870년 나폴레옹 3세 치하에서의 전면적인 파리 도심 개조, 1889년 파리 박람회 때 세워진 에펠탑, 1989년 프랑스 대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루브르에 첨가된 유리 피라미드 등은 모두 옛 모습에 집착하기보다는 이 시대의 창의성을 높이 평가하는 프랑스의 전통을 보여준다. 1845년부터 1864년까지 진행된 비올레르뒤크의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비올레르뒤크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건축자재였던 철을 사용해 구조적인 문제를 명확히 해결하는 합리주의자였다. 이러한 프랑스의 전통에 비추어볼 때 옛 모습대로 복구하는 것은 시대정신이 배어 있는 창의성을 중시하는 파리의 문화적인 역사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우리의 숭례문 복구 경험을 떠올려 보자. 당시 정부는 최고의 장인이 전통 재료와 방법으로 원래의 모습대로 복구할 수 있게 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단청 안료와 기와 등 전통 재료 상당수는 명맥이 끊긴 지 오래였고 장인들은 손 연장보다는 전동공구에 익숙해져 있었다. 조선 초기에 건립된 후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변화를 거친 숭례문의 원형을 어느 시대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도 복구 과정 내내 논쟁거리였다. 장인들의 헌신적인 인내와 전문가들의 고뇌를 통해 잊혀진 전통 재료와 방법을 살려내고 일제강점기에 변형된 부분을 바로잡아 복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완공 후 1년도 안 돼 단청이 박락해 부실 복구 논란에 휩싸였다. 잊혀진 옛 공법을 우리 시대에 재현하는 것의 한계를 절감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원형 복구를 당연한 것으로만 여겼던 우리에게 프랑스의 대처는 충격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비록 옛것이라고 하더라도 이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프랑스 사회의 유연성이 부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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