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지 28일로 딱 두 달이 됐다. 북-미 간 팽팽한 대치 국면은 여전하지만 북-러(25일) 중-러(26일) 미일(26, 27일) 등 한반도 주변국들은 잇달아 정상회담을 이어가고 있다. 미일 정상은 5, 6월에 또 만날 예정이고 북-중 정상회담도 6월 전후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오히려 비핵화 논의 트랙에서 한발 떨어져 있는 듯하다.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물밑 징후도 별로 없다. 급기야 4·27 판문점 선언 1주년 기념행사는 남북 정상이 모두 불참하는 ‘주인공 없는 행사’가 되어 버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행사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천천히 오는 분들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한국이 점차 ‘북핵 외딴섬’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한국만 빼고 분주한 북핵 주변국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포스트 하노이’ 첫 대외행보로 러시아를 찾은 이후 비핵화 당사국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미국의 빅딜 압박에 북-중-러가 스크럼을 짜자 미일이 급속히 밀착하고 나서는 모양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7일 기자회견에서 전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習近平)과 북-러 정상회담과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중국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공동 구상(로드맵)을 갖고 있다”면서 “이 로드맵의 첫 번째 부분은 상당 정도 이행됐으며 이제 두 번째 부분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했다. 중-러의 기존 비핵화 구상에서 ‘쌍중단(雙中斷·북한 도발과 한미 연합훈련 동시 중단)’이 이행됐으니 이젠 ‘쌍궤병행(雙軌竝行·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체결 동시 진행)’에 나설 때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이젠 빅딜 압박에서 물러나 북한과 눈높이를 맞춰야 할 때라고 강조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6일(현지 시간) 북-러 회담에 대해 “러시아와 중국이 우릴 돕고 있는 데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제재 협조의 공을 치켜세우는 방식으로 “앞으로도 대북제재에서 이탈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
관련국 정상들의 광폭 행보는 다음 달 이후에도 예고돼 있다. 당장 시 주석의 평양 방문, 푸틴 대통령의 방북 가능성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루히토(德仁) 새 일왕을 만나기 위해 다음 달 25∼28일 일본을 국빈 방문한다. 6월 28, 29일 오사카(大阪)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도 참석한다.
○ 文 “천천히 오는 분들을 기다려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 1주년인 27일 별다른 일정을 소화하지 않고 청와대 관저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열린 1주년 기념식에는 참석하는 대신 영상 메시지를 보내 “새로운 길이기에, 또 다 함께 가야 하기에 때로는 천천히 오는 분들을 기다려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때로는 만나게 되는 난관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함께 길을 찾아야 한다”고도 했다.
북한의 불참으로 ‘반쪽 행사’가 됐고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올 상반기에도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현재로선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은 하나하나 이행되고 있다”면서 △전사자 유해 발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등을 사례로 거론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 단독으로 유해 발굴이 진행되고 있고, 사무소 남북 소장급 회의가 9주째 열리지 않고 있는 만큼 현실과는 온도 차가 있다.
이번 행사를 연출한 탁현민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은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 행사였다. (북한이 참석하지 않아) 반쪽짜리 행사라는 말도, 지금 기념행사나 하고 있을 때냐는 말들도 다 담아 들었다. 이해도 간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럼 통일이 그렇게 쉽게 될 거라 생각했단 말입니까?’라며 지난 판문점 회담 때 힘들다고 한숨 쉬던 제게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해주었던 말이 준비하는 내내 생각났다”고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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