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권력서열 3위 리잔수(栗戰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한국 국회의장 격)이 7일(현지 시간) 베이징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을 만나 “한국 정부가 사드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해달라”고 압박했다. 문 의장은 중국 측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방한을 요청했지만 확실한 답을 얻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국가 의전서열 2위인 문 의장이 시 주석과 면담을 추진했지만 관례와 달리 시 주석을 만나지 못해 ‘홀대 논란’도 또 불거졌다. 이에 따라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가 여전히 한중관계의 잠복된 갈등 요소임을 확인한 국회의장의 방중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6~8일 방중한 문 의장은 8일 오전 국빈관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주중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리 위원장이 사드 문제를 분명하게 언급했다. 실수할까봐서인지 (준비한 메모를) 그대로 읽더라”고 전했다. 문 의장-리 위원장 회담에 배석한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리 위원장이 (사드에 대해) 원론적인 말을 했다”고 넘어가려 했다.
리 위원장 회담에 함께 배석한 김진표 민주당 의원이 추가 발언하려 하자 박 의원이 “김 의원님, 여기서 끝내는 게 좋죠”라며 만류했다. 김 의원은 “사드에 대해 구체적으로 요청한 건 아니지만 리 위원장이 사드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가 분명하게 입장을 취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문 의장은 “사드 문제는 한반도 비핵화가 해결되면 저절로 끝나는 문제이기에 비핵화를 위해 중국이 촉진자 역할을 잘해달라고 답하고 넘어갔다”며 “중국이 사드 문제를 물고 늘어질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하지만 사드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한국 정부와 달리 중국은 사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최종적으로는 완전히 철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현재 한국은 사드 배치에 대한 환경영향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평가가 끝난 뒤 사드의 최종 배치를 결정할 내년에 사드가 다시 양국 갈등요소로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 의장은 “남북을 방문해 (북핵 문제 해결의) 촉진자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며 시 주석의 방한을 요청했다. 하지만 문 의장은 리 위원장 등 중국 측이 “딱 부러지게 한국에 간다 안 간다를 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문 의장은 이번 방중에서 시 주석과 면담을 추진했지만 불발됐다. 2014년 정의화 국회의장, 2013년 강창희 의장은 모두 방중 때 시 주석을 만났다. 2007년 임채정 의장을 제외하면 한국 국회의장은 방중 때마다 국가주석을 만났다. 문 의장은 면담 불발에 대해 “중국 측이 ‘외교 시스템, 정책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카운터파트(문 의장의 경우 리 위원장) 외에 “의례적으로 시 주석을 30분 만나 인사하는”(문 의장) 의전은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문 의장은 “(이번 방중 때) 모든 외교 책임이 리 위원장,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8일 회동), 양제츠(楊潔¤)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 (6일 회동) 선에서 가능해졌다. 시 주석을 만날 필요성이 없어졌다”면서도 “(중국이) 미국 식으로 따라가는 대국의식(을 보였다)”이라고 했다. 하지만 중국 측 설명과 달리 시 주석은 지난해 12월 왕이(王毅)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카운터파트인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방중하자 직접 만났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