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극한 대치를 벌이고 있는 미국이 중동에 12만 병력을 파견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3일 이란을 향해 “무슨 짓이든 한다면 엄청나게 고통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미 정부는 전일 페르시아만 호르무즈 해협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선박 2척을 포함한 총 4척의 배가 공격당한 사건의 배후로도 이란을 지목했다. 이에 이란 정부 관계자도 “미국이 움직이면 우리도 ‘그들의 머리를 칠 것(hit on the head)’”이라며 맞서고 있다.
○ 매파 볼턴 주도로 파병 검토
뉴욕타임스(NYT)는 패트릭 섀너핸 국방장관 대행이 9일 백악관 회의에서 이란이 미군을 공격하거나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 중동에 12만 병력을 파견할 계획을 보고했다고 13일 전했다. 12만 병력은 2003년 이라크 침공에 동원된 미군 규모와 비슷하다. 미군은 5일 이란을 겨냥해 항모전단, 전폭기 등을 중동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백악관 회의 참석자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섀너핸 대행,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 댄 코츠 국가정보국장(DNI) 등이다. 특히 ‘초강경 매파’ 볼턴 보좌관이 병력 파견 계획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 계획과 관련해 병력 수 등 세부 사항에 대한 보고를 받았는지,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NYT는 덧붙였다.
NYT는 미국의 파병 검토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시절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칭하며 강경 대응을 주도했던 볼턴 보좌관의 영향력이 아직도 건재함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다만 비용 등을 이유로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려는 트럼프 행정부가 스스로의 정책을 뒤집으며 대규모 병력을 또다시 중동에 파견할지 미지수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트럼프 “이란, 무슨 짓 벌이면 고통받을 것”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란이 무슨 짓이든 한다면 엄청나게 고통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AP통신은 군 당국자를 인용해 “미군은 ‘이란 혹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대리 군사세력이 폭발물을 사용해 배에 구멍을 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호르무즈 해협 상선 공격 사건의 배후가 이란일 가능성을 전했다.
하지만 이란 정부는 12일 선박 공격 직후 제기된 이란 배후설을 즉각 부인하며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한편으로는 미국이 테러 조직으로 지정했던 이란 혁명수비대의 아미르 알리 하지자데 사령관이 직접 나서 “과거에는 미 항공모함이 심각한 위협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이란의 표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등 강경 대응 기류도 동시에 드러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3일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을 찾아 이란 문제의 협력을 요청했다. 하지만 제러미 헌트 영국 외교장관은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높아져 우발적 충돌이 발생할 위험을 우려한다”며 양측 모두의 자제를 요청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3개국 외교장관은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만나는 대신에 각각 개별로 만났다. 유럽 주요국이 ‘미국과 공동 전선을 형성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란 관측이 제기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3개국 장관이 폼페이오 장관으로 하여금 (이란 공조란) 목적을 달성하는 일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유럽 주요국은 미국이 2017년 일방적으로 이란과의 핵 협정을 파기한 만큼 현 사태를 무조건 이란의 잘못으로만 볼 수 없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중동의 긴장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은 대화”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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