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환율조작 등을 통해 달러에 대한 자국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절하하는 국가들에 상계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에 ‘환율 전쟁’으로도 압박하려는 의도가 담겼지만, 조작 여부를 판단할 기준이 분명치 않은데다 전 세계 관세장벽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논란이 예상된다.
블룸버그통신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23일(현지 시간) 달러에 대한 자국 통화 가치를 절하하는 국가들에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정책)변화는 미국 산업에 피해를 줄 수 있는 ‘통화 보조금(currency subsidies)’을 상무부가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을 해외 수출국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스 장관은 “다른 나라들은 이제 더 이상 통화정책을 이용해 미국 노동자와 기업들에 불이익을 주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계관세는 수입 제품이 수출국의 보조금 지원에 힘입어 싼 값으로 들어오고, 이 때문에 공정한 경쟁구도와 자국 산업에 피해를 줬다고 판단될 경우 수입국이 해당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다. 미 상무부는 국제무역위원회(ITC)와 함께 수입 제품들에 대한 수출국의 보조금 지원 여부와 그 규모를 조사, 판정해 상계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번 정책이 실제 시행되면 미국 내 수입 제품에 부과되는 관세는 매년 최소 390만 달러(약 46억4200만 원)에서 최대 2100만 달러(249억 9000만 원)까지 더 늘어날 전망이라고 NYT는 전했다.
상무부의 발표는 미국이 중국 제품에 대규모 관세를 부과하며 거친 통상전쟁을 벌이고 있는 시점에 나왔다. 또 미국 기업들의 중국 화웨이 제품 사용을 금지하며 전방위로 경제적 압박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더해 미국은 이번에는 달러에 대한 자국 통화가치를 절하하는 것을 ‘보조금’으로 보고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강수를 추가로 들고 나온 것.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중국이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며 수차례 위안화의 가치 하락을 문제 삼았다. 중국 위안화의 환율을 문제삼아 상계관세 카드를 꺼내든 압박 정책은 로스 장관, ‘대중 강경파’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 국장이 주도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그러나 환율 변동은 이를 유발하는 변수들이 많은데다 ‘환율 조작’임을 확인할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게리 허프바우어 선임연구원은 NYT에 “누가 적정한 가치를 정하느냐가 문제”라며 “이것을 정의할 합의된 방법론이 없다”고 했다.
위안화 가치는 이달 초 미중 무역협상이 결렬되고 트럼프 행정부의 잇따른 ‘관세 폭탄’이 더해진 후 급격히 하락했다. 위안화 가치는 달러당 6.9위안대에 들어서며 지난해 11월30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머지 않아 7위안을 돌파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 재무부는 지난해 반기 환율보고서에서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독일 등과 함께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유지했다. 로이터통신, CNBC 등은 이날 로스 장관의 발표로 이미 관찰대상국에 들어가 있는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독일, 스위스 등 6개국에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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