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피터슨 “대학때 재미로 가상언어 만들어… 돈까지 벌게될 줄은 몰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25일 03시 00분


‘왕좌의 게임’ 대성공 뒤엔 현실감 넘치는 가상언어
‘콘랭’ 담당한 데이비드 피터슨 인터뷰


“발라 모굴리스(Valar morghulis)!”

19일(현지 시간) 폭발적 인기 속에 종영한 미국 케이블채널 HBO의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가상 언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러 가상 언어 중 고대 발리리아어(語)로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뜻이다.

‘왕좌의 게임’의 대성공에는 현실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현실감 넘치는 가상 언어가 큰 역할을 했다. 이 기상천외한 가상 언어를 탄생시킨 사람이 2009년부터 이 드라마의 ‘랭귀지 크리에이터(language creator)’를 맡고 있는 데이비드 피터슨 씨(38·사진)다. 드라마 종영을 맞아 그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 8개 언어 능력자, 태권도로 한국어도 배워


피터슨은 1981년 미 캘리포니아주 가든그로브의 멕시코 이민가정에서 태어났다. 영어와 스페인어를 자유롭게 쓰는 환경이었다. 이 외 독일어, 프랑스어, 아랍어, 러시아어, 미국 수화, 국제 공용 가상어 에스페란토어까지 8개 언어에 능통할 정도로 언어 감각이 뛰어나다.

태권도로 다진 한국어도 ‘기본’ 수준으로는 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 태권도를 배우면서 ‘사부님’, ‘준비’, ‘시작’ 등을 배웠고 검은 띠 1단을 땄을 때쯤 한국어 숫자도 1000까지 셀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든그로브에서 살고 있는데 한국 기업도 많고 한국어를 쓰는 사람이 꽤 있어서 한국어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교 2학년 때 에스페란토어를 접했다. 이를 통해 자신이 직접 언어를 만드는 재미에 빠졌다. 언어학계에서는 이 같은 인공어(人工語)를 콘랭(Constructed Language·만들어진 말)’이라고 부른다. 당시만 해도 가상 언어 창조를 ‘재미’로 했을 뿐이다. ‘직업’으로 이어질지 몰랐다고 했다. 그는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에서 언어학 석사를 땄지만 대학 때 같이 공부했던 아내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 대학원에 진학했을 뿐이다. 언어를 만드는 일로 돈을 벌 줄 몰랐다”고 밝혔다.

그는 2007년 비슷한 취미를 가진 ‘언어 괴짜’ 9명과 ‘언어 창조회(Language Creation Society)’란 단체를 만들었다. 2009년 ‘왕좌의 게임’ 시즌 1 제작을 준비하던 HBO가 이 단체에 “드라마 속 도트락어를 만들 사람을 찾는다”고 연락했다. 여러 회원이 자신만의 샘플을 제출했지만 제작진은 피터슨을 낙점했다. 프로듀서 D B 와이스는 “도트락족의 정수를 잘 담아냈다. 경이로울 정도”라고 극찬했다.

○ 영어→가상 언어→녹음→대사 통째로 외우기

배우들은 ‘세상에 없던 언어’로 어떻게 연기했을까. ‘단기 과외’라도 해줬느냐고 묻자 그는 “영어로 된 대본을 받아 가상 언어로 번역했다. 이후 번역본을 읽고 배우들에게 음성 파일로 주면 배우들이 이 파일을 듣고 연습한다”고 설명했다. 말 그대로 ‘듣고 반복하기’(listen and repeat)다.

도트락어를 배우려는 이가 참고할 ‘정석 발음’을 꼽아 달라고 했다. 그는 “시즌 1에서 도트락족 시녀 ‘이리’ 역을 맡은 배우 암리타 아차리아의 발음이 최고”라고 했다. 또 “한국인은 도트락어보다 고대 발리리아어가 더 배우기 쉬울 것”이라며 “언어학습 웹사이트 듀오링고에 드라마 속 가상 언어를 등록해 놨다. 자신의 실력을 직접 점검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시즌 1에서 도트락족 지도자 ‘칼 드로고’ 역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미국 배우 제이슨 모모아도 생생한 도트락어 실력을 뽐내며 한때 할리우드 캐스팅 업자들에게 ‘영어를 못 하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다고 했다.

현재까지 그가 창조한 언어는 50개가 넘는다. 인터뷰를 마치며 ‘한국의 동아일보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를 도트락어로 부탁했다. 곧 답변이 왔다.

‘M′athchomaroon, zhey Dong-A Daily Newspaper Readers haji Koriya! Me allayafa anna shilolat yeri!’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데이비드 피터슨#왕좌의 게임#가상언어 콘랭#랭귀지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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