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민주 후보들 “공립대 무상교육” vs 공화 “무책임한 사회주의 정책”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8일 03시 00분


美 1805조원 학자금 빚 시한폭탄… 내년 대선 ‘뜨거운 감자’로


#1
4월 16일 미국 뉴욕 맨해튼 34가 뉴욕대 의대 병원에서 다른 의대에서 보기 드문 ‘장학금 감사’ 행사가 열렸다. 1년 전 신입생들과 가족들 앞에서 모든 학생에게 연간 약 5만5000달러(약 6490만 원)에 이르는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급하겠다던 약속을 학교가 지켰기 때문이다. 평균 18만4000달러의 학자금 빚을 안고 교문을 나서야 했을 뉴욕대 의대생들은 학자금 부채의 빚에서 해방됐다. 뉴욕대의 ‘등록금 없는 의대’ 프로젝트에 1억 달러를 기부한 케네스 랭곤 홈디포 창업자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학생들이 언젠가 의사가 돼 지불 능력이 없는 환자를 치료할 때 ‘치료비는 제가 부담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2 지난달 19일 미국의 흑인 억만장자 로버트 F 스미스(57)가 조지아주 애틀랜타 모어하우스대 졸업 축사에서 졸업생 전원의 학자금 대출을 갚아주겠다는 ‘통 큰 졸업 선물’을 약속했다. 이 학교 졸업생은 396명이며 학자금 대출액은 4000만 달러에 이른다. 스미스는 “모든 졸업생에게 꿈과 열정을 좇을 자유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백인에 비해 학자금 대출 상환에 더 큰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학생들에게 대출금 상환의 족쇄에서 벗어나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미국 부자들이 사재를 털어 학생들의 대학 학자금 대출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나설 정도로 미국의 학자금 대출 위기는 심각하다. 학자금 대출 규모가 1조5000억 달러를 넘어서고 부실이 급등하면서 연방정부와 정치권에서 ‘학자금 부채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 1조5000억 달러 학자금 부채 시한폭탄



미국 연방준비제도에 따르면 2018년 6월 현재 학자금 대출 잔액은 1조5300억 달러(약 1805조4000억 원)에 이른다. 미국인 4명 중 1명이 학자금 부채를 안고 있다. 평균 학자금 대출 규모는 3만7172달러다. 연방 의원 가운데 학자금 대출을 아직 갚고 있는 의원이 꽤 있을 정도로 학자금 부채의 부담이 크다.

미 대학 학자금 대출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른 부채에 비해 가파르게 상승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2009년 이후 주택담보 대출은 3.2% 증가한 반면 학자금 대출은 102% 늘었다. 금융위기로 사람들의 형편은 어려워졌지만 대학 등록금은 지속적으로 상승해 대출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청년들의 부채 부담도 커졌다. 뉴욕 연방준비제도 소비자신용패널 조사에 따르면 2018년 말 현재 18∼29세 미국인 청년들은 주택담보 대출, 학자금 대출 등으로 1조 달러 이상의 빚을 지고 있다.

4년제 대학 졸업생들이 학자금 대출을 상환하려면 평균 19.7년이 걸린다. 학자금 대출 규모가 크다 보니 제때 상환하지 못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뉴욕 연준에 따르면 2018년 4분기(10∼12월) 학자금 대출 부실 규모는 1660억 달러에 이른다. 학자금 대출자 500만 명이 360일 이상 학자금 대출 상환을 연체했다는 것이다. 30일 이상 연체한 사람은 4300만 명에 이른다.

천문학적인 규모로 부풀어 오른 학자금 부채 시한폭탄 시계는 지금도 재깍재깍 가고 있다. 2023년까지 학자금 대출의 약 40%가 부도날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주택 대출 부도율은 11.5%였다.

○ “부자들의 선물로 해결 못 해”… 정치권 개입

“모어하우스대 졸업생의 학자금 부채를 갚아 주겠다는 억만장자 스미스의 선물은 매우 관대하다. 그러나 학생들의 위기는 자선으로 해결할 수 없다. 정부의 조치로 해결돼야만 한다.”

2016년에 이어 2020년 민주당 대선 경선 참여를 선언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무소속·버몬트)은 트위터에 이 같은 글을 올리고 학자금 부채 위기를 ‘부자의 선행’에 기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샌더스 의원은 “내가 당선된다면 모든 이가 의료보험에 가입하고, 공립 대학은 무료이며, 최저임금은 최소 시간당 15달러인 나라를 갖게 될 것”이라며 ‘민주적 사회주의’ 공약을 내걸었다.

샌더스 의원은 2017년 연간 소득 12만5000달러 미만 가구 출신의 학생에게 대학 등록금을 면제해 주고 2년제 대학을 무료화하겠다는 ‘모든 이를 위한 대학(College for All Act)’ 법안을 발의했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사추세츠), 키어스틴 질리브랜드 상원의원(뉴욕), 털시 개버드 하원의원(하와이) 등 민주당 유력 대선 주자들도 당시 이 법안 지지를 선언했다.

2008년 대선에서 처음 등장한 민주당의 대학 학자금 대출 경감 공약은 대선을 두 번 더 치른 뒤 초중고교처럼 대학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무상 대학’ 개념으로 진화했다. 2015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모든 미국인이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를 무료로 다니게 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으면서 ‘무상 대학’ 정책을 공론화했다.


○ ‘빚 없는 대학’부터 대출 탕감까지 공약 봇물

샌더스 의원의 ‘등록금 없는 대학’ 개념에서 한발 더 나아간 개념이 “등록금은 물론이고 기숙사비, 식대, 책값 등의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대출을 받지 않게 하겠다”는 ‘빚 없는 대학’ 아이디어다. 가구가 부담할 수 있는 대학 학비를 정부가 추정한 뒤에 이를 넘어서는 비용을 지원하자는 주장이다.

브라이언 샤츠 상원의원(민주·하와이)은 지난해 ‘빚 없는 대학’ 개념을 담은 ‘초고등교육법안(Higher Education Act)’을 발의했다. 여기에는 워런, 질리브랜드 의원과 코리 부커 상원의원(뉴저지) 등 민주당 대선 주자들이 참여했다. 피트 부티지지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은 연방과 주 정부의 파트너십, 저소득층을 위한 펠 기금 확대 등 ‘빚 없는 대학’ 실행 방안을 제시했다. 에릭 스월웰 하원의원(민주·캘리포니아)은 졸업 후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약속하는 학생들을 위한 ‘빚 없는 대학’을 지지했다.

워런 상원의원은 4월 모든 공립 대학의 등록금과 학비를 면제하고 학생들의 대출 부채를 탕감하는 ‘등록금과 빚 없는 보편적 대학’ 개념을 내놨다. 그는 소요 예산을 5000만 달러 이상 고소득 가구에 연 2%의 세금을 부과하는 ‘초백만장자 세금(ultra-millionaire tax)’으로 충당하겠다고 제안해 논란을 일으켰다. 미 시사주간지 ‘애틀랜틱’은 “민주당 대선 후보들에게 대학 등록금 인하를 지지하느냐는 이제 문제가 아니다”라며 “올바른 방법이 무엇이냐가 관심사”라고 전했다.

○ 민주당 내에서도 “마법 필요해” 선심 공약 비판

문제는 ‘돈’이다. ‘샌더스 법안’에는 연 410억 달러가 들어간다. 공화당 등 보수 진영에서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사치스러운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정부가 지원금을 풀면 대학들의 등록금 인상을 부추길 것이고, 대학의 등록금 인상을 강제로 제한하면 교육연구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자 자녀도 공짜 대학을 다니게 돼 부자들이 더 혜택을 볼 수 있으며 예산에 쪼들리는 대학들이 졸업생 기부금 확보를 위해 부유층 자녀들을 우선적으로 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공짜 대학은 멋진 일이긴 하지만 불행히도 교수들은 급여를 받길 원한다”며 “완전히 비실용적인 아이디어”라고 반박했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창업자도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미네소타)은 “내가 마법을 가진 ‘지니’여서 모든 이에게 나눠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4년제 무상 대학’ 아이디어를 비판한 것이다. 그 대신 보다 온건한 방안을 주장했다. 학생들의 학자금 대출 만기 연장이나 오바마 전 대통령 식의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 무료화를 제안했다.

정치 전문매체인 ‘힐’에 따르면 민주당 대선 후보 중 선두를 달리고 있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도 5월 초 뉴햄프셔 유세에서 ‘무상 커뮤니티 칼리지’ 정책을 지지했다. 그는 “이제 (초중고교) 12년 교육으로 더는 충분하지 않다”며 “이 방안이 4년제 대학 교육비용을 절반으로 낮출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토 오로크 전 하원의원(텍사스)은 4월 사우스캐롤라이나 타운홀에서 “한 푼도 내지 않고 다닐 수 있어야 한다”며 커뮤니티 칼리지 무상 교육을 주장했다.

○ 백악관, 학자금 대출 제한 및 대학 책임 확대 추진

‘공짜 대학’ 논쟁은 천문학적 학자금 대출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와 학부모의 불만을 파고들며 2020년 미 대선 정국에서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진보 교육단체인 데모스의 마크 휼스먼 정책연구국장은 “과거 어느 대선보다 ‘적정한 학비의 대학(college affordability)’에 대한 공감대가 많다”고 말했다.

내년 대선 정국에서 야권 후보의 공세를 막아내야 하는 트럼프 행정부도 학자금 대출 부실 관리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1일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매킨지에 학자금 대출 부실에 따른 정부 부담을 추정하는 작업을 맡겼다. WSJ는 행정부 관리를 인용해 “학자금 대출을 민간 투자자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학자금 대출 부실이 커질 것을 대비한 조치다.

백악관은 대학 등록금 상승세를 잡기 위해 학자금 대출에 상한선을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는 대학이 요구하는 등록금과 학비 전액을 정부 학자금 대출로 충당할 수 있다. 이 같은 무제한 대출이 대학들이 등록금과 학비를 더 많이 올리게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학이 학자금 대출을 이용해 등록금을 지나치게 올리지 못하도록 학생들의 대출금 상환에 대학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이 “정부 도움이 없으면 민간 금융회사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계층들이 학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반대하고 나섬에 따라 대선 국면에서 논란이 점점 뜨거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미국#학자금 대출#학자금 부채#무상대학#2020 미국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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