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우리는 이반 골루노프다.’
10일(현지시간)자 러시아 유력 일간지 1면에 나온 헤드라인 문구다. ‘이반 골루노프’는 마약 유통 혐의로 최근 경찰에 체포된 러시아 탐사보도 기자 이름이다. 왜 기자 이름이 러시아 주요 신문 1면을 장식했을까?
러시아에서 최근 유명한 탐사보도 언론인이 마약 거래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언론 자유를 저해하는 음모’라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모스크바타임스와 CNN 등에 따르면 러시아 유럭 신문사인 코메르산트, 베도모스티, RBC 등은 이날 신문 1면 상단에 일제히 ‘나, 우리는 이반 골루노프다’라는 문구를 게재했다. 이와 함께 “골루노프의 마약 유통 혐의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며 “그를 체포한 경찰을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골루노프 씨의 체포가 ‘부당하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셈이다. 프리랜서 기자인 골루노프 씨(36)는 러시아 정부의 미디어 통제를 거부하는 독립언론인으로 인정받아온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6일 모스크바 시내에서 경찰 검문을 받던 중 가방에서 4g의 마약이 발견돼 체포됐다. 이후 경찰은 “그의 아파트에서 코카인도 발견됐다”며 마약 거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은 이를 기각하는 대신 2개월의 자택구금을 선고했다. 골루노프 씨는 현재 집에 갇혀있는 상태다. BBC에 따르면 그는 최근 러시아연방보안국 관료와 자국 내 장례사업 등의 연계와 비리에 대한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에서는 누군가를 음해하거나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 마약을 몰래 가방이나 자택에 넣는 방식이 자주 사용된다. 러시아 유력 언론들이 이번 사건이 기자의 취재를 막는 한편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음모’일 수도 있다고 보는 이유다.
특히 1면에 성명을 발표한 것은 2015년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공격을 받자 세계 시민들이 언론의 자유를 주창하면 외쳤던 구호인 ‘나는 샤를리다’(Je suis Charlie)를 연상시킨다. 실제 체포 후 이뤄진 골루노프 씨의 소변 검사에서는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골루노프 씨의 구금이 알려지자, 러시아 유명 래퍼 옥시미론(Oxxxymiron) 등 예술가와 저명인사들도 구금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러시아 시민들도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러시아 골루노프 씨를 지지하고 있다.
러시아인들은 그만큼 자국 내 언론통제가 심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에는 러시아 정부가 숨기고 있는 ‘시리아 용병 파병’ 문제를 취재하던 기자가 자택 발코니에서 추락하는 의문사가 발생했다. 미국 비정부기구 언론인보호위원회(CPJ)에 따르면 1992년 이후 러시아에서는 무려 기자 58명이 피살됐다. 국제인권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가 조사한 세계 언론자유도 조사에서 러시아는 100개국 중 83위다. 사태가 확산되자 러시아 정부는 “이번 사건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보고가 됐으며 정부도 사태를 주시 중”이라고 밝혔다.
김윤종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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