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에 대한 추가관세 부과를 유예키로 하는 등 미중 무역전쟁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 전망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통신장비제조업체인 화웨이에 대한 제재 완화도 시사하는 등 미중 양국 사이에 끼어있던 한국 산업계는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 오사카를 방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29일 정상회담을 갖고 상호 추가관세 부과 유예, 무역협상 재개 등에 합의했다.
미중 양국이 이번 회담을 앞두고 한 치의 양보 없는 기 싸움을 벌여온 만큼 이날 회담에서는 관세 부과 유예와 협상 재개만 돼도 만족할만한 결과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미국은 최근 3000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25%포인트 높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바 있지만, 이번 협상에서 이를 유예키로 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폐막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 상무부가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미국 기업들의 거래를 금지한 화웨이에 대한 제재도 완화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화웨이에) 엄청난 양의 제품을 판매한다”며 “그건 괜찮다. 우리는 계속 제품을 판매할 것이다. (미국) 기업들은 (제품을) 팔지 못하는 것에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기업들은 화웨이에 그들의 장비를 판매할 수 있다”면서 “여기에는 거대한, 국가비상(사태) 문제가 없다”고 부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국가 안보와 미국민의 안전에 위험을 끼칠 수 있는 기업 장비를 구매 또는 사용을 금지하도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오는 30일로 예정된 한국 기업인들과의 면담도 한결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1박2일의 방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인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30일 오전 국내 5대 그룹 총수들을 포함한 재계 인사들을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할 기업인으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5대 그룹 총수를 비롯해 허창수 GS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허영인 SPC회장, 박준 농심 부회장, 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 등이 참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엄치성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협력실장은 “미국 경제가 호황이니 투자를 당부하는 선에서 발언하는 등의 세일즈 자리가 될 것으로 본다”며 “초청 기업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기업들로 이들 기업이 트럼프 대통령이 화웨이 제재 동참과 같은 부담을 주는 발언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엄 실장은 이어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앞으로 협상을 지켜봐야 한다”며 “미중 무역전쟁은 일종의 패권전쟁이기 때문에 앞을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잠시 시간을 벌었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경제 변화 흐름에 우리 기업들이 적절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병기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위원은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양국간 상호관세 부과로 중국의 대미 수출은 줄어드는 대신 아세안 시장을 둘러싼 중국과 한국의 경쟁이 심화되는 등 국제 교역 흐름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한국의 대중 수출은 줄고 대미 수출은 늘어나는 등의 변화도 있다. 한국 기업들이 이런 흐름을 잘 파악해 경영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한국은 대중국 수출이 급감하는 등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중국은 우리나라 한 해 수출의 25%, 미국은 15%를 차지하는 1, 2위 교역국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중국이 상대방 국가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실제 부과할 경우 전자, 철강, 화학 등 한국의 수출 주력 업종도 직간접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1~5월 한국의 대중국 수출액은 553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5.4% 줄었다.
미국의 대중국 관세 부과로 올 1분기 기준 중국의 대미국 수출이 8.8% 줄어든 912억 달러에 그치는 등 중국의 대미국 수출이 감소한 영향이다.
2018년 기준 한국의 중간재 대중 수출액은 1282억 달러로 전체 대중 수출액의 79.0%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기 때문에 중국의 수출 감소는 한국 산업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한국의 대중 수출 중 가공무역 비중이 높은 반도체, 전기기기, 철강, 화학 등의 품목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고 있다.
실제 올 1분기 한국의 대중 메모리반도체 수출액은 글로벌 수요감소 영향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3% 감소한 133억 달러에 그친 가운데, 대중 메모리 수출액은 58억 달러로 평균보다 많은 39.3%의 감소폭을 보였다. 전체 반도체 대중 수출액도 31.5% 줄어든 85억 달러에 그쳤다.
철강의 경우 올 1분기 3.4% 감소한 9.9억달러, 화학은 6.4% 감소한 49.5억 달러에 머물렀다. 정밀기기는 8.2% 줄어든 13.3억 달러였다.
재계 관계자는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으로 우리 기업들이 투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아왔다”며 “이번 관세부과 유예와 협상 재개로 양국간 험악했던 분위기가 누그러졌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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