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日 자유무역 위선 드러나” WSJ “유일 승자는 중국이 될것”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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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경제보복 파장] 해외 업계-언론도 日조치 비판


일본 정부의 반도체 수출 규제 움직임에 대해 일본은 물론이고 주요국 언론과 기업의 우려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한국 반도체 업체가 세계 메모리반도체 업계를 좌지우지한다는 점에서 반도체 산업 전체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걱정도 커지고 있다. 일본의 조치로 소재 공급이 끊겨 삼성전자의 생산에 지장이 생기면 반도체를 이용하는 모든 기기의 생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급망 자체에 교란이 생기면 그 파급 효과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 정보기술(IT) 업체들의 우려 급증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가 발표된 다음 날인 2일 전 세계 IT 업체들은 한국의 반도체 공급업체들에 대해 ‘수출 물량이 충분한지’를 점검했다. 메모리반도체는 사실상 대체재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당장 자신들에게 미칠 여파를 걱정한 것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들은 “한국 업체들이 공급하는 메모리반도체는 중국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업체들은 최근 7나노 제품 양산에 들어갔지만 중국 업체들은 이보다 훨씬 제품력이 낮은 10나노급을 주력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글로벌 IT 업체들이 한국 업체들에 제품 공급 가능 여부를 타진한 것이다.

그런 피해는 일본도 피해갈 수 없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한국은 일본 반도체 장비업계의 ‘큰 단골’이다. 한국에서 제조된 반도체를 수입하는 일본 기업도 적지 않다. 반도체 소재의 한국 수출이 제한받으면 일본도 피해를 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사나이 아쓰시(長內厚) 와세다대 경영대학원 교수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이번 조치는 일본 기업에 좋지 않다. 일본과 한국의 제조 부문이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라며 “이번 조치의 유일한 승자는 중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WSJ는 또 “일부 분석가들은 일본이 ‘제 발등을 찍는다’고 지적했다. 한국산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를 이용하는 일본 기업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규제로 미국의 동맹인 한일 관계가 ‘새로운 저점’을 찍었다고도 진단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자유무역에 대한 일본의 위선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 통상 질서를 흔드는 폐해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일 “아베 정권은 자유무역의 주창자로 해외에서 기대를 모았지만 (수출 규제 조치로) 이런 평가가 손상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조치가 2010년 중일이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갈등을 빚을 때 중국이 자국산 희토류의 일본 수출을 중단한 것과도 유사하다고 전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희토류 수입처를 다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신문은 ‘전 징용공(강제징용 피해자)을 둘러싼 대항 조치의 응수를 자제하라’는 제목의 사설에선 “징용공 문제에 통상정책을 들고 나오는 것은 긴 안목에서 볼 때 불이익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날 반도체 기판에 바르는 포토레지스트(감광액)를 만들어 한국에 수출하는 일본 신에쓰(信越)화학 홍보담당자는 “포토레지스트는 종류가 매우 많다. 이번 규제에 어떤 품목이 해당되는지부터 정밀하게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 명백한 ‘자유무역’ 위반


경제 전문가들은 일본의 수출 규제가 세계무역기구(WTO)가 강조하는 상호호혜와 차별대우 폐지 규정에 어긋난다고 봤다. 곽노성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공정하고 자유롭고 왜곡 없는 무역을 선언한 지 하루 만에 일본이 자기모순적인 발언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국 제품이 상대국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상응하는 보복을 할 수는 있지만 일본의 수출 규제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무역 조치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이 정치적 논리로 경제 보복을 한 셈이어서 국제 통상 시장에서 일본의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주도하는 일본이 이번 보복 조치로 국제 통상 질서를 스스로 저버렸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박형준 lovesong@donga.com·김범석 특파원 / 세종=최혜령 기자


“첨단 정밀소재는 日에 의존… 국산화하려면 수년은 걸려”


반도체-디스플레이 타격 왜 심각한가

“국산화가 말이 좋지, 하루아침에는 안 됩니다.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겠어요.”

2일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한국 업계도 그간 국산화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첨단 공정에는 일본 소재 회사와 공동개발 형식으로 협력해 왔다”며 “화학물질이라는 게 배합비율 등이 기술력이라 갑자기 바꾸거나 대체할 곳을 찾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전날 일본 고객사에 정확한 규제 품목 확인에 나섰고, 일부 업체는 국내와 대만 소재 및 화학 회사 등 대체 가능한 공급처 업체 확보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일각에서는 왜 반도체 강국인 한국이 일본 소재 의존도가 높은지 의아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한국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관련 소재 국산화는 50% 수준이다. 정밀한 공정으로 갈수록 일본 의존도가 높아진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반도체 생산 기술 주도권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갔을 때 일본은 새 공정을 개발할 때마다 자국 기업과 소재도 함께 개발했다”며 “이후 반도체 생산 기술 주도권이 한국으로 넘어오자 한국은 서둘러 대량생산을 하려다 보니 소재나 장비를 함께 육성하기보다 일본에 수입하는 쪽으로 방법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어 “고순도 에칭가스나 정밀한 최첨단 공정에 들어가는 포토레지스트 등을 국산화하려면 수년이 걸린다”고 덧붙였다.

일본이 수출 규제에 나선 포토레지스트 중에서도 불화아르곤(ArF) 레지스트, 극자외선(EUV) 레지스트는 한국에선 만들지 못한다는 게 반도체 업계의 설명이다.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웨이퍼 위에 정밀하게 회로 패턴을 그리는 노광 공정에 필요한 핵심 재료다. 일본 스미모토, 신에쓰, JSR 등이 한국 업체들의 주요 구매처다.


특히 업계에서는 일본 정부가 포토레지스트 중에서도 차세대 노광장비인 EUV 레지스트를 수출규제 품목으로 정했다고 보고 있다. EUV 공정은 반도체 미세공정을 가능케 하는 차세대 핵심 기술로 삼성전자가 대만 TSMC를 따돌리기 위한 승부처로 삼은 공정이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가 삼성전자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첨단 레지스트 국산화를 기다리다 차세대 공정이 늦춰져 후발 주자에 밀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식각 공정에 사용되는 에칭가스는 확보하지 못하면 공정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일본 스텔라, 모리타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90%에 달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고순도 에칭가스는 일본 기술력과 수년의 격차가 있다. 그동안 꾸준히 정밀화학 소재를 개발한 일본 업체를 단기간에 따라가긴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은 연일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결국 한국 국산화 속도만 높일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김 연구원은 “중국의 희토류 보복 당시 일본 기업은 아프리카 등으로 구매처를 다변화해 중국이 결국 백기를 들었다”며 “일본 산업계는 당시 학습효과도 있고,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의 경제 보복 가능성이 높아지자 한국 정부와 기업이 국산화 및 대체 공급기업에 대해 논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산업자원통상부 소속의 한 여당의원은 “정부가 소재 국산화 프로젝트에 나섰고, 일부 업체는 미리 대비를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유근형 기자
#일본 정부#반도체 수출 규제#경제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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