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모드로프 “천천히 추진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통일 독일 됐을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6일 03시 00분


동독 공산당 시절의 마지막 총리 한스 모드로프 인터뷰


한스 모드로프 전 동독 총리(91·사진)는 동독 공산당 시절의 마지막 총리다. 1989년 11월 13일 빌리 슈토프 총리의 사임으로 총리가 된 뒤 그해 12월 7일 에곤 크렌츠 통일사회당 당수가 축출당하면서 사실상 동독의 통치자가 됐다. 그리고 1990년 3월 18일 자유선거 후 총리에서 물러났다.

모드로프 전 총리는 4개월 남짓한 재임 시절 헬무트 콜 당시 서독 총리와 동독의 미래를 놓고 4차례 담판을 벌였다. 지난달 22일 베를린 좌파당 당사(옛 공산당 청사)에서 만난 그는 통일을 지향하는 한반도에도 참고가 될 만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통일 직전 동서독 회담의 과정을 회상하며 “통일을 밀어붙이는 콜과 미국에 대항해 양국이 조약공동체 관계를 맺자는 제안을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다음 대안으로 그가 준비한 방안은 3, 4년의 조약 공동체를 거쳐 국가연합으로 가고, 이후 연방제를 하는 3단계 통일 방안이었다. 그는 “모스크바를 두 번이나 찾아가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회담을 했지만 이미 체제 불안에 빠진 소련은 독일의 통일 과정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힘이 없는 동독의 방안은 어디서도 통하지 않았다. ‘통일을 결정하는 주체는 힘’이라는 것을 보여준 교훈이었다.

모드로프 전 총리는 천천히 통일을 추진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통일 독일이 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콜 전 총리와의 회담 과정에서도 그는 150억 마르크를 지원해주면 동독을 재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그는 “150억 마르크는 사실 큰 금액이 아니었다”며 “동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1000억 마르크의 전쟁 보상금을 소련에 냈지만, 서독은 소련에 한 푼도 안 내고 오히려 서방의 마셜플랜(1947년부터 1951년까지 미국이 서유럽 16개 나라를 대상으로 한 대외원조계획)으로 지원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전후 1000억 마르크는 1990년쯤엔 이자까지 계산해서 6000억 마르크나 되는 큰돈”이라고 덧붙였다. 2차 세계대전의 엄청난 보상을 동독이 다 감당했기 때문에 서독은 동독을 마땅히 지원했어야 했다는 의미로 읽혔다. 이는 한반도 통일 과정이 시작되면 북한도 다양한 논리로 남한의 경제 지원을 당연한 것으로 요구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는 동독 지역에서 극우 세력이 세력을 키우는 것에 대해 동독 출신의 요아힘 가우크 전 대통령(2012∼2017년 재임)의 말을 빌려 우회적으로 의견을 밝혔다. 가우크 전 대통령은 “통일의 잘못된 결과로 나타나는 정치적 변화지만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적으로 간주하지 말고, 그들과 대화하고 협상해야 한다. 이미 의회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독일 주요 정당이 AfD와의 연정을 거부하는 것과 다른 태도다.

인터뷰를 마치며 1971년 동독이 서독 방송 시청을 허용한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금지 정책은 관철시킬 수 있을 때만 해야 한다.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관철시키지 못한다면 오히려 권력을 잃게 된다. 당시 기술적으로 금지해 봐야 막을 방법이 없었기에 방송 시청을 허가한 것이다.”

베를린=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동독 총리#한스 모드로프#독일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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