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안전 보장을 위한 무역 관리를 앞세우면서 한국을 별도 국가로 분리해 관리에 나선 것은 한국에 대해서만 ‘정밀 타격’을 하기 위한 환경 정비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일본의 안보 우방국인 백색국가 27개국 그룹인 ‘이(い) 지역①’에서 한국만 빼낸 뒤 신설한 ‘리(り) 지역’에 배치한 것은 ‘지역 규제’를 명분으로 특정 국가 규제에 나설 발판을 마련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4일부터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한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감광액),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 강화 내용을 구체화한 상태이다. 백색국가 그룹에서 별도로 뺀 상태이나 대응 조치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3개 화학 물질에 대한 규제 내용은 수출허가용 제출 서류를 종전 3개에서 최대 9개까지 늘리는 등 좀 더 구체화됐다.
한국이 ‘이 지역①’에 계속 포함됐다면 일본 기업이 3개 화학물질을 한국에 수출할 때 △수출 허가 신청서 △신청 사유서 △계약서 및 사본 등 기초적인 3개 서류만 제출하면 됐지만 ‘리 지역’으로 바뀌면서 제출 서류가 늘어났다. 일본 기업이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수출한다면 △수출령 조례에 따른 기재사항 대비표 △설명서 등 기술자료 △수입자 사업 내용 및 존재 확인 자료 △수입자 서약서와 복사본 등 4개를 더 내야 한다. 제출 서류 7개는 북한과 이란, 이라크 등이 속한 지(ち) 지역 수출 때와 같은 수준이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9·11테러 이후인 2002년 1월 국정연설에서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나라들과 같은 범주에 한국을 포함시킨 셈이다.
에칭가스 수출은 더 힘들어진다. 7개 서류에다 △수입자의 구매 물품 조달 실적 및 최종 제품의 생산 상황 △최종 제품의 제조 흐름에 관한 자료 등 2개를 추가로 더 내야 한다.
문제는 일반인들이 경제산업성 홈페이지를 보더라도 한눈에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홈페이지에는 △규제하는 물품에 관한 법령 △수출국 △제출 서류 △신청 창구 등 4개 정보만 공개돼 있다. 법령이 워낙 복잡한 데다 수출국도 기호로 표시돼 있어 사전 정보를 갖고 법령집을 함께 봐야만 해독할 수 있을 정도다.
8월에 한국이 ‘백색국가’에서 제외되면 신설된 ‘리 지역’에 적용할 규제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 일본 기업은 대량살상무기(WMD)로 전용될 수 있는 물품 중 식품 및 목재를 제외한 모든 품목에 대해 개별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본 수출 기업들이 3개 서류만 내다가 9개 서류를 내려면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불허’할 명분이 많이 생기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금은 3개 품목에 한해 시범적으로 서류를 늘렸지만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시킨 뒤에는 수입하는 한국 기업이나 수출하는 일본 기업 모두에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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