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북한 측 협상대표인 김명길 전 베트남 대사가 조만간 비핵화 실무협상을 재개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38노스는 11일(현지시간) 김 전 대사가 40여년동안 외교업무만 해온 베테랑으로 ‘대미통’이라고 소개했다.
38노스에 따르면, 김명길은 1959년 3월 14일 북한 자강도 만포에서 태어났다. 김일성대학에서 수학해, 1981년쯤 졸업했다. 1982년 외무성에 들어갔고, 3년 뒤인 1985년에 자메이카 주재 북한 대사관에 서기관으로 파견됐다.
김명길은 1990년 평양으로 복귀해 외무성 미주국에서 근무했으며, 199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북핵위기 당시 ‘제네바 합의’ 협상에 참여했다. 1996년 미국 뉴욕의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의 참사관으로 승진한 그는 2000년 7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렸던 북미미사일협상에 대표로 참여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김정일의 특사인 조명록 당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미국 워싱턴을 방문 당시 수행하기도 했다.
김명길은 2002년 외무성 미주국의 부국장에 임명됐고, 2006년 10월에 유엔대표부 공사로 미국에 복귀해 2009년까지 재직했다. 그는 2006년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5차 6자회담에 참석했으며, 2007년에는 경제에너지협력실무그룹 회의에 북한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2010~2015년 외무성의 2인자로 일하던 그는 2015년 8월 베트남 대사로 부임해 올해 4월초까지 재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김 대사를 평양으로 불러들여 김혁철 후임으로 북미 실무회담의 대표직을 맡기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38노스는 분석했다. 또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제1부상이 김 위원장에게 김명길을 대미협상대표로 추천했다고 지적했다.
38노스는 김명길이 북미회담이 잘되는 것도, 실패하는 것도 모두 지켜본 베테랑이라고 평가했다. 예를 들어 지난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해서 협상을 가졌을 때 김명길도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켈리 당시 차관보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북해 강석주 제1부상과의 회담에서, 북한이 제네바합의를 위반해 비밀리에 고농축우라늄(HEU)을 개발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강 제1부상은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고 북한체제 안전을 보장해준다면 HEU를 통한 핵 개발 계획은 물론 미국의 안보상 우려 사항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듬해 1월 6일 북한에 HEU를 해명하라는 결의안을 통과시키자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했고, 이후 북미 갈등이 급격히 고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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