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NYT)가 15일(현지시간) 일본이 미국과 러시아처럼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다른 나라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제조 등에 쓰이는 핵심소재 수출규제를 두고 한국과 일본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것에 주목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일부터 자국 기업들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등 3개 핵심소재를 한국에 수출할 땐 매번 당국의 심사 및 허가를 받도록 관련 규제를 강화했다.
이를 두고 논란이 커지자 일본 정부는 “규제 강화 대상이 된 품목은 군사적 전용이 가능한 것들”이라며 “이를 수입한 한국 측에서 단기간 내 납품을 강요하는 등 부적절한 관리 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돼 안보상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NYT는 ‘국가 안보’는 해석의 여지가 광범위해 많은 국가들이 꺼려왔으나 최근 미국과 러시아 등 여러 국가들이 안보를 이유로 다른 나라에 제재를 가했고, 일본도 이에 동참했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동안 국가 안보 등을 이유로 유럽과 일본 등 주요 교역국을 공격해왔다.
또한 러시아도 국가 안보를 이유로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통행을 제한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바레인, 아랍에미리트(UAE) 등도 카타르와 국교를 단절하고 인적·물적 교류를 봉쇄할 때 국가 안보를 이유로 들었다.
NYT는 전문가들을 인용, 이러한 조치들로 인해 오랫동안 확립된 국제 규범이 약화되고 있고, 이로 인해 향후 무역전쟁이 더 흔하게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콩 중문대학교에서 국제통상법을 가르치는 브라이언 머큐리오 교수는 “이것(국가 안보)이 너무 자주 이용되면, 국제 무역 체제 전체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두 나라가 아니라 10개국 혹은 15개국이 불분명한 국가 안보를 이유로 일방적인 조치를 취한다면 국제 규범의 가치는 약화된다”고 강조했다.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 국제정치경제학과 일본 정치학을 가르치는 진 팍 교수는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전혀 관계가 없는 사안에 대해서도 무역이나 경제적 이해관계를 무기화해 다른 나라를 압박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일본의 불만은 정당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번 무역 조치는 그러한 불만을 해소할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NYT는 또 한국과 일본 간 갈등이 계속 지속될 경우 세계적인 IT 업체들이 반도체와 다른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돼 전 세계 성장을 더욱 압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CLSA의 산지프 라나 애널리스트는 “비메모리 반도체와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플렉서블 스크린 등 첨단 제품의 생산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이 문제가 일회성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더 큰 문제의 시작인가를 두고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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