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우리나라 대북 공작원으로 북한에 잠입해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과 대면했던 박채서(65) 전 국가안전기획부 해외정보원이 임무 중에 김정일 위원장의 술을 거절했던 일화를 털어놨다.
박채서 전 정보원은 22일자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잠입해 핵 개발 정보를 수집하면서 정권의 핵심에 접근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면서 “한반도에서 전쟁을 회피하기 위한 임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에 거주하는 박 전 정보원은 한국군 정보부대 소령이었고, 1994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공작원으로 발탁됐다. 그가 북한에 잠입하라는 임무를 받은건 40세가 되던 해였다.
몇몇 공작원이 북한 잠입에 실패하고 행방불명 됐지만, 박 전 정보원은 사업가로 가장해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북한 고위 간부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작전에서 그는 북한이 자신의 군복무 경력을 이상하다고 의심하지 않도록 일부러 고액의 빚을 만들었다. 그는 “파산한 군인이 주머니 사정이 곤란해 사업을 시작했다는 가짜 인생을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북한 고위 간부와의 신뢰를 구축한 뒤 박 전 정보원은 한국 기업의 TV 광고를 촬영하고 계약금 등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사업을 제안했다. 광고 촬영에는 반드시 북한 최고 지도자의 판단이 필요한데, 이를 통해 북한에 침투하자는 게 안기부가 세운 작전이었다.
작전은 적중했고, 박 전 정보원이 평양에 체류하던 1997년 6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날 기회를 얻었다. 야심한 밤에 고급 차가 자신을 맞이하러 왔고, 초대소 응접실에서 만난 김정일 위원장은 술을 권했다고 한다.
여기서 박 전 정보원은 도박을 했다. “어머니와의 약속이 있다”면서 “이 술은 남북한이 통일되면 마시겠다”고 대답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그의 말에 웃었고 분위기는 누그러졌다.
박 전 정보원은 “김정일 위원장은 아첨을 싫어하는 성격이라고 조사했던 내용이 주효했다”고 털어놨다. 김 위원장은 30분간 그와 대화하면서 고미술품 판매 사업과 한국의 차기 대선 정세에 대해 관심을 표명했다. 이후 그는 광고 촬영을 명목으로 북한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게 됐다.
이 때 수집된 정보는 경색된 남북 관계로 고심하던 김영삼 정권의 대북 전략 수립에 도움이 됐다고 아사히신문은 설명했다. 하지만 1997년 말 남북 화해를 외치던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자 작전은 중지됐다.
이후 박 전 정보원은 “조직의 지시를 이탈했다”는 비판을 받고 쫓기듯 퇴직했다고 한다. 2010년에는 북한에 국가 기밀을 누설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징역 6년의 실형 판결을 받고 복역했다. 당시엔 극단적인 선택도 생각했다고 그는 고백했다.
박 전 정보원의 대북 침투 작전인 ‘흑금성 사건’을 영화화한 ‘공작’은 지난해 8월 한국에서 개봉해 약 5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일본에서 영화 ‘공작’은 약 1년이 지난 이달 19일 개봉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