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한일 격돌 시작…치열한 공방 현장 ‘팽팽한 긴장감’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3일 20시 02분


“일본의 무역제재를 적절하다고 생각하십니까?”

23일 오전 10시 10분 스위스 제네바 세계무역기구(WTO) 본부 내 일반이사회 회의장.
기자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에 대해 묻자,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한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주제네바 일본대표부 대사는 아무 말 없이 회의장으로 향했다. WTO에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펼쳐질 한국과 일본의 팽팽한 여론전을 의식한 모습이었다.

이날 WTO 일반이사회에서는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에 대한 한일 간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다. WTO 일반이사회는 164개 전체 회원국 대표가 중요 현안을 논의·처리하는 자리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회의 시작인 이날 오전 9시부터 회의장 앞에는 한국과 일본의 20여개 언론들 비롯해 100여명의 취재진으로 장사진을 이뤘다.

이날 오전 9시 40분부터 각국 대표들의 입장이 시작됐다. 이날 오전 9시 55분 우리 측 대표인 산업통상자원부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이 단호한 표정으로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기자가 “일본의 무역 제재의 문제점과 우리 측 방어 전략이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산업부 관계자는 “김 실장이 모든 것을 오후 발언에 집중하고 있다. 양해해달라”고 말했다. 김 실장에 이어 회의장에 데니스 시어 주제네바 미국 대표부 통상담당 대사가 나타났다. 그 역시 일본의 무역 제재에 대해 미국의 의견을 묻는 질문에 별도의 응답을 하지 않았다.

회의 시작 전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나돌았다. 이를 반영하듯 일본 측 대표 중 한명인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주제네바 일본대표부 대사는 회의 시작 시각보다 10분여 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그 역시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긴장된 얼굴로 회의장으로 향했다. 앞선 9일 열린 WTO 상품 무역 이사회에서도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와 관련해 백지아 주제네바대표부 대사와 준이치 대사가 설전을 벌였다.

팽팽한 긴장감을 의식한 듯 일본 정부 대표단 관계자들은 한국 취재진에게 와 일본 대표단 관계자가 들어갈 때마다 웃으며 어떤 인물인지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일본 대표 중 핵심인물로 알려진 야마가미 신고 일본 외무성 경제국장은 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기자가 일본 측 관계자에게 묻자 “안건 논의가 예정된 오후에 참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 시작 전에 오지 않은 이유를 묻자 “특별한 건 없다”고 일본 정부 관계자는 밝혔다.

회의장 내에는 한일 대표단 자리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회의 시작 진전까지 회원국들에게 어떻게 설득력 있는 의견을 전달할지 골몰하는 분위기였다. 한국은 이번 무역제재가 사실상 일본의 정치적 보복인 점을, 일본은 안보 조치의 일환을 강조한다는 방침이다.

앞선 22일 밤 제네바에 도착한 김 실장은 공항에서 취재진에 “통상 업무 담당자 입장에서 보면 일본 조치는 상당히 무리가 많다. (WTO에서) 일본 주장에 대해 준엄하지만 기품있게 반박하겠다”고 말했다. 또 그는 “화이트 리스트 문제로까지 확대하면 일본의 (WTO 규범) 위반 범위는 더 커진다”며 “일본 정부가 신중하게 조처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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