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6월 톈안먼(天安門) 운동 당시 시위대 강경 진압을 지휘한 리펑(李鵬·사진) 전 중국 총리가 22일 숨졌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향년 91세. 정확한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방광암으로 투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28년 공산당 지도자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1931년 부모가 모두 국민당에 처형되자 1939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에게 입양됐다. 1945년 공산당에 입당했고 옛 소련 러시아 모스크바 동력대에서 수력발전을 공부했다. 총리에 오른 1994년 그는 양쯔강 싼샤(三峽)댐 건설을 추진했다. 2008년 완공된 이 댐은 길이 2309m, 용량 2만2500MW(메가와트)에 달하는 세계 최대 수력발전소다.
그는 1982년 공산당 중앙위원, 1987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1988∼1998년 제7, 8대 국무원 총리를 지냈다. 1989년 톈안먼 사태 당시 인민해방군 동원을 주장하며 대화를 강조한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와 맞섰다. 그는 덩샤오핑의 승인을 얻어 강경 진압을 주도했다. 서구 언론은 그를 ‘베이징의 도살자(butcher of Beijing)’로 불렀지만 진압 공로를 인정받아 1998∼2003년 ‘국회의장’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에 올랐다. 2008년부터 건강이 악화됐고 최근 몇 년간 수차례 사망설도 제기됐다. 자녀들은 에너지업계의 실세다. 장남 리샤오펑은 교통운수부장, 차녀 리샤오린은 중국전력국제유한공사 회장을 지냈다.
리 전 총리는 한국과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도 나섰다. 1991년 5월 북한을 방문해 “중국은 앞으로 두 개의 한국 정책을 펼 것”이라며 유엔 단독 가입을 바라던 북한에 남북한 동시 가입을 설득했다. 그해 9월 남북한은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그는 한중 수교 후 처음 한국을 찾은 중국 총리다. 1994년 10월 김영삼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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