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조사 사실상 금기’ 레바논, 87년 만에 조사해봤더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30일 16시 56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도심의 대형 이슬람교 모스크와 기독교 마론파 성당.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하며 끊임없이 대립할 수밖에 없는 이 나라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장소로 꼽힌다. 베이루트=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도심의 대형 이슬람교 모스크와 기독교 마론파 성당.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하며 끊임없이 대립할 수밖에 없는 이 나라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장소로 꼽힌다. 베이루트=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인구 조사가 사실상 금기시되고 있는 레바논에서 한 민간 조사기관이 87년 만에 관련 조사를 시행해 화제다. 국민들의 종교가 기독교, 이슬람교 수니파와 시아파, 유대교 등으로 복잡한 레바논은 종파 문제로 오랜 사회적 갈등을 겪어왔다. 1975~1990년에는 종교 갈등이 시발점이 된 내전을 겪기도 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의 종교 비율을 파악할 수 있는 인구 조사는 사회적 갈등을 유발시킬 수 있는 요소로 인식돼 왔다. 실제로 레바논인들 사이에선 종교를 물어보는 건 피해야할 행동으로 여겨진다.

29일 중동전문매체 미들이스트모니터와 톰슨로이터 계열 중동뉴스매체 ZAWYA에 다르면 최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 본사를 둔 조사기관 ‘인포메이션 인터내셔널’이 레바논 인구 조사를 시행한 결과 약 550만 명(해외 거주자 약 130만 포함)의 국민 중 시아파와 수니파를 믿는 비율이 각각 31.6%로 나타났다. 기독교인은 30.6%를 기록했다.

이는 1932년 레바논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행된 인구 조사 결과는 크게 다르다. 당시 인구 조사는 약 105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됐고 기독교인 비율이 58.7%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슬림은 40% 정도였다.

레바논은 이 인구 조사 결과를 기준으로 대통령은 기독교, 총리는 수니파, 국회의장은 시아파 출신 중에서 선출하는 독특하면서도 불안정한 정치 시스템을 운용해 왔다. 레바논은 ‘아랍국가 중 유일하게 기독교인이 더 많은 나라’로 불려왔고, 시리아와 더불어 역시 유일하게 아랍국가 중 국교를 이슬람으로 정하지 않은 나라였다.

비록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인구 조사는 아니지만 기독교 인구 비율이 크게 줄어 든 게 이번 조사로 드러나 향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소셜미디어 상에서는 “인포메이션 인터내셔널은 사드 하리리 총리가 소유한 회사인가?” 식의 반응이 나온다. 또 일부는 종교 간 분쟁이 다시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인포메이션 인터내셔널의 설립자인 자와드 아드라는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나타낸다는 게 놀랍다. 지난 50년간의 선거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결과가 나올 것임을 알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레바논에서는 기독교인들이 다수였던 시절에도 기독교인들의 불안감이 컸다. 지속적으로 종교 간 갈등으로 사회적 혼란과 내전 발생하고, 주변 아랍국가들은 모두 무슬림들이 다수였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계 무장세력과 시리아 군대가 레바논에 들어왔을 때는 이스라엘로부터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레바논 기독교인들 중 적잖은 수는 유럽, 북미, 중남미 등으로 이민을 떠났다. 이중에는 콜롬비아 출신의 유명 여가수 샤키라 같은 인물도 있다. 샤키라의 경우 조부모가 레바논 출신의 기독교인이다. 이들은 레바논을 떠나 처음 미국에 정착했고, 다시 콜롬비아로 이민 갔다.

또 레바논에선 내전 뒤에는 사실상의 거주 분리 분위기가 강해져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종교를 물어보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거주지와 그곳에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를 물어보는 것도 레바논에서는 피해야 할 질문으로 여겨진다.

카이로=이세형특파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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