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하원이 보리스 존슨 총리에 대항해 ‘노딜 브렉시트(합의없이 유럽연합(EU)를 탈퇴하는 것)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노딜 브렉시트를 강행하겠다고 밀어붙였던 존슨 총리의 차후 행보와 영국 경제의 향방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존슨 총리는 조기총선으로 엄포를 놓았지만 실현가능성도 낮은 편이고 총선이 실시된다고 해도 이길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3일(현지시간) 영국 하원은 노딜 브렉시트를 저지하는 법안을 찬성 328표 대 반대 301표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다음 달 31일로 예정된 브렉시트 시한까지 EU와 브렉시트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브렉시트 시한을 3개월 뒤인 내년 1월31일까지로 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상원에서) 보수당 일부 의원들이 이 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시도할 수 있지만 결국 막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며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여왕의 동의를 얻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존슨 총리가 여왕의 동의를 얻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이 법안을 왕실에 보내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헌법 위반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
존슨 총리는 브렉시트 연기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조기총선을 실시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법안 통과에 보수당 의원 21명이 찬성표를 던지는 등 분열 조짐을 보이자 조기총선으로 의원들을 교체해 자신의 입지를 더욱 굳힐 속셈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카드는 말 그래도 엄포용일 뿐 현실화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캐서린 바나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유럽법학 교수는 워싱턴포스트(WP)에 “존슨 총리는 보수당과 협력할 다른 정당을 찾으려 할 수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FT는 “존슨 총리에게 남은 합법적 선택지 중 하나는 조기총선을 위해 법안 통과 전까지 의회 해산에 동의하도록 의원들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기총선이 실시되기 위해서는 하원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보수당이 다수당 지위를 잃은 지금 조기총선을 치르려면 노동당과 다른 야당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총선을 원한다면 존슨 총리가 적어도 브렉시트 전인 10월14일이나 15일에 투표를 실시하겠다는 확약을 줘야 한다”며 “먼저 노딜 브렉시트 방지법부터 제정하라”고 말했다.
조기총선이 실시된다고 하더라도 존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제1야당인 노동당 지지율은 별로 높지 않지만 자유민주당이나 브렉시트당이 보수당 의석을 위협할 수 있다.
CNN은 “(조기총선을 하면) 보수당은 특히 스코틀랜드에서 많은 의석을 잃을 것이 거의 분명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만회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CNN은 2017년 테리사 메이 당시 총리가 비슷한 이유로 조기총선을 실시했다가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존슨 총리의 전 홍보국장 거토 해리스는 BBC에 “존슨 총리는 역사상 최단기간 총리가 될 것을 감수할 준비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만약 존슨 총리가 조기총선을 실시하지 못할 경우 남은 선택지는 자신의 공약대로 시한 내에 EU와 브렉시트 재협상을 성사시키는 것이 거의 유일하다.
토니 트래버스 런던정치경제대학(LSE) 교수는 “법안 통과로 노딜 브렉시트도 안 되고, 조기총선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존슨 총리는 매우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될 것”이라며 “EU와 협상을 위해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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