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을 증폭시킨 일본의 대(對)한국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강화 조치가 발동된 지 4일로 꼬박 두달을 맞은 가운데,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이 조치를 준비하게 된 전말이 알려졌다.
4일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 등을 인용해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지난해 10월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두달 여가 지난 올해 초부터 한국에 대한 경고조치 검토를 물밑에서 시작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가 구체적인 대항조치 검토를 지시했으며, 재무성 출신의 후루야 가즈유키(古谷一之) 관방부장관보를 중심으로 외무성, 경제산업성, 농림수산성 등 관련 부처 간부들로 이뤄진 일종의 대응팀이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한일청구권협정에 기초한 정부간 협의 및 중재위원회 설치 등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한국 측이 거부하자 ‘대항조치’ 발동의 검토를 본격화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대응팀 내에서는 ‘메시지성이 큰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뤘으며, 이런 가운데 경제산업성은 한국의 주요 산업인 반도체를 타깃으로 할 것을 제안했다.
일각에서는 ‘갑작스런 반도체 규제는 좋지 않다’며 신중론도 나왔지만, 한 경제 각료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문재인 정권에는 메시지가 전해지지 않는다”고 진언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아베 총리는 지난 6월 관계 부처 간부들에게 한국 측에 ‘경고’ 차원에서의 대항 조치를 주문했다고 한다. 아베 총리는 “신념을 굽히지 말고, 출구를 찾으면서 하길 바란다”며 출구 전략도 함께 모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방일 외국인 및 경제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하라”며 대항조치를 주문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지난 6월 말 오사카(大阪)시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폐막 5일 후인 7월4일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조치를 발동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한국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종료하기로 결정하는 등 문제가 안전보장 국면에까지 이르자 일본 정부도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아베 총리는 주변에 “한국과의 문제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주변에 말하는 등 한일 갈등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마이니치는 일본 정부는 징용 문제에서 진전이 없다면 오는 11일 칠레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및 오는 12월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의 등에서도 별도의 한일 정상회담에는 응하지 않을 구상이라고 전했다.
한 일본 정부 고위관계자는 “문재인 정권 동안 관계 개선은 어렵다”며 “문제를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한편 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대응을 요구하면서, 외교 루트를 통해 ‘타개책’도 제안했지만 한국 측이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제안한 방안은 징용 피해자 지원을 위해 한국 측이 100% 출자해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기업에 자발적인 기부를 요청하는 방안이었다고 한다.
일본 측이 재단에 출자하면 배상 문제는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한일청구권협정에 모순되기 때문에, 재단에 ‘기부’하는 방식을 통해 협정과의 정합성을 취하면서 해결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이 같은 자국의 제안에 한국 외교부가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한국 정부는 결국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어 한국 정부는 6월 중순 한일 기업이 공동 출자해 재단을 설립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나 일본 정부는 즉각 이 제안을 거부하고 반도체 재료의 수출 규제 강화 검토를 진행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