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 “쿠르드 인도적 지원”… 쿠르드족 “우리가 큰 빚 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26일 03시 00분


쿠르드족의 유일한 친구는 이스라엘?

“쿠르드족에게는 산을 제외하고는 친구가 없다.”

중동에서 수천 년간 나라 없이 떠돌며 각국 정부의 박해를 받아온 쿠르드족이 처지를 한탄할 때 쓰는 표현이다. 이슬람국가(IS)의 전쟁이 끝나 효용 가치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이달 초 쿠르드족을 토사구팽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만 봐도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중동전문매체 미들이스트모니터는 21일 “쿠르드족에겐 이스라엘이라는 친구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스라엘과 사이가 나쁜 이란, 이라크 등이 자국 쿠르드족을 탄압하고 있어 동맹을 맺을 여지가 많은 데다 이를 통해 터키와 러시아의 영향력도 견제하려는 속내로 풀이된다. ‘적(敵)의 적은 나의 친구’인 상황이다. 나라 없이 2000여 년을 떠돌다 1948년에야 이스라엘을 건국한 유대인들의 모습이 쿠르드족의 현 상황과 상당 부분 겹친다는 평가도 나온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달 10일 “용감한 쿠르드인들에 대한 터키의 침공과 인종 청소를 강력히 비난한다. 이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미들이스트모니터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1960년대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쿠르드족에 대한 군사 및 인도적 지원을 단행해왔다. 이라크 거주 쿠르드족 지도자인 무스타파 바르자니도 “이스라엘만큼 쿠르드족이 큰 빚을 진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 사절단에게도 “유대인만 쿠르드족을 신경 쓴다”며 고마워했다.

이스라엘의 핵심 주적인 이란과 시리아에는 각각 약 600만 명과 200만 명의 쿠르드족이 거주하고 있다. 이라크에도 500만∼600만 명이 산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안보를 위협하는 나라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이 자치권을 확대하기를 바란다. 나아가 독립국가 ‘쿠르디스탄’ 설립을 외치며 해당 국가의 혼란을 부추겨야 이스라엘의 안보가 굳건해진다고 믿고 있다.

2017년 9월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가 분리·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진행했을 때도 이라크 정부,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모두 반대 및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이스라엘만이 “KRG의 독립 노력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스라엘의 지지 의도가 완전히 순수하지 않은 데다, 친미 성향 국가라서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 거론된다. 특히 현재 이스라엘 정국이 워낙 혼란스러워 실제 지원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스라엘은 4월과 9월 두 차례 총선을 치렀지만 의석수 1, 2위 정당이 모두 연정 구성에 실패해 세 번째 총선을 치러야 할 수도 있다. 네타냐후 총리가 10일 쿠르드족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도 일간 하아레츠 등은 “쿠르드족을 버린 미국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며 알맹이 없는 발표라고 비판했다. 시리아 출신의 한 쿠르드인은 기자에게 “처한 현실이 워낙 어렵다 보니 도움을 가릴 처지는 아니지만 이스라엘의 관심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는 속내를 밝혔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쿠르드족#이스라엘#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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