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요금 인상은 낙타 등 부러트린 지푸라기"
신자유주의가 이끈 경제 성장 이면에
연금 민영화, 학자금 대출 부담의 그늘
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인 칠레가 지하철 요금 30페소(약 50원) 인상을 계기로 전국적인 시위에 휩싸였다. AP통신은 27일(현지시간) 칠레 사태는 단지 지하철 요금 문제가 아니라고 보도했다. 빈부 격차 심화와 공공 서비스 부실이 만들어낸 총체적인 사회 구조의 모순에 국민이 폭발했다는 분석이다.
보도에 따르면 처음 칠레가 지하철 요금을 올리겠다고 발표했을 때는 아무도 대규모 시위로 이어지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일주일 후 고등학생들은 표를 사지 않고 개찰구 회전식 문을 뛰어넘어 통과하기 시작했다.
아무 경고 없이 18일 시위대는 역과 지하철에 불을 질렀고 식료품, 백화점, 약국들이 불길에 휩싸였다. 수십만명이 집이나 길에 고립됐지만 칠레인들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정부 실정을 비난하면서 시위를 촉구했다. 이제까지 시위에서 경찰과의 충돌로 인한 공식 사망자는 19명으로 집계됐다. 25일 수도 산티아고에는 100만명이 넘게 모였다. 다수 역사학자는 이는 칠레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시위라고 밝혔다. 현대적으로 번영하는 듯했던 칠레에서 분노가 폭발했다고 AP는 전했다.
27일 산티아고에서 열린 정부 규탄 콘서트에는 1만5000명이 운집했다.
콘서트에 참석한 34세 마리오 곤살레스는 “칠레인들이 원하는 건 모두에 대한 평등한 대우다. 우리는 공짜를 원하는 게 다니라 단지 공평한 대가를 치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칠레는 신자유주의를 내세워 2010년 멕시코에 이어 남미에서 두번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됐다. 다음달 16~17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및 12월 25차 유엔 기후변화회의를 개최한다.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높아지는 동안 사각지대로 내몰린 사람들도 있다. 칠레의 급진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의 예시는 연금정책이다. 칠레는 재정악화를 우려하며 연금 민영화를 추진했다. 건강과 교육 시스템에도 사적인 부담을 늘렸다.
많은 칠레인이 전문의의 진료를 받기 위해 1년을 기다리거나, 진료 약속이 잡혔다는 전화를 가족이 죽고 나서 몇 달 뒤에야 받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한다고 AP는 전했다.
또 수십만명이 길면 50대까지 갚아야 하는 학자금 대출에 시달리고 있다.
알렉시스 모레이라 아레나스(37)와 그의 부인은 중산층이지만 월급의 10%를 개인계좌 형태의 민영연금에 넣고 있다. 평균 연금 수령액은 매달 300달러 수준이며, 이는 은퇴자가 한달을 사는 데 필요한 금액의 3분의 1 수준이다. 나머지 30%는 2세 아들의 사립 유치원 비용으로 들어간다. 그의 부인은 매달 110달러를 학자금 대출로 상환해야 한다.
유치원 교사인 록사나 피사로(52)는 일주일에 7일 일하는 76세 노모를 위해 행진한다고 밝혔다.
그는 “사람들은 이 발전한 나라를 남미의 스타 국가로 본다. 마천루와 하나에 4000달러짜리 지갑을 파는 고급 쇼핑몰이 있다”면서 이런 모습이 다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하철 요금 30페소 인상은 낙타의 등을 부러트린 지푸라기였다. 기다리는 것도 지쳤다”고 밝혔다. 멀리서 보면 칠레는 남미 지역에서 경제 발전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민주적인 선거 절차를 통해 좌우 진영 모두 대통령을 배출했고 시장경제가 주도하는 경제 성장으로 지역에서 유엔 인간개발지수(UNHDI)가 가장 높다. 이는 기대수명, 교육, 국민소득 등을 반영한 지수다.
하지만 2017년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칠레 인구의 가장 부유한 1%가 전체 재산의 33%를 가져간다. 이는 칠레가 OECD 회원국 중 가장 불평등한 국가라는 의미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억만장자로, 칠레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AP는 전했다.
화들짝 놀란 피녜라 대통령은 26일 각료 전원을 교체하겠다고 했지만 시위대를 달래기엔 역부족이다. 시위대는 1980년 칠레의 군사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시절 제정된 현행 헌법이 신자유주의 모델의 근간이라고 보고, 개헌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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