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경제 믿던 트럼프, 탄핵 바람에 위기감… 민주, 대어 없어 한숨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일 03시 00분


재선이냐 탈환이냐… 美대선 1년 앞으로

《 미국 대선(2020년 11월 3일)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정세를 뒤흔들며 돌출 행보를 하고 있지만 야당인 민주당 후보들은 뚜렷한 대안 세력으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

혈맹이던 쿠르드족을 버린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결정, 정적(政敵)을 공격하는 대가로 다른 나라에 원조를 제공하려 한 ‘우크라이나 스캔들’, 탄핵 조사에 나갈 수밖에 없는 실무 당국자들에 대한 인신공격, 나라를 위해 헌신한 군인들도 싸잡아 비판했다가 자신이 속한 당으로부터도 비판받는 대통령. 그 외에도 미국과 러시아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탈퇴, 이란의 핵개발을 묶어두던 이란 핵협정(JCPOA) 폐기….

취임 이후 국제사회의 질서까지 뒤흔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73)의 돌출 행보는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뚜렷한 대안 세력으로 떠오르지 못하는 미국 민주당은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지리멸렬한 야당은 독불장군 스타일의 대통령을 견제하지도 못하고, 대체할 능력도 없이 집안싸움만 벌이고 있다. 2020년 11월 3일 미국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집권 공화당의 후보는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으로 확정됐다. 민주당에서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77),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70·매사추세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78·버몬트), 피터 부티지지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37),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55·캘리포니아), 대만계 기업가 앤드루 양(44) 등이 그저 각축만 벌이고 있을 뿐이다.


○ 공화 “탄핵 불안” vs 민주 “본선 경쟁력 의문”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 모두 속으로는 “이대로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상당하다. 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우크라이나 측에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父子)의 부패 의혹 조사를 압박했다는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이에 따른 하원의 탄핵 조사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현직 관리들은 9월 24일부터 시작된 탄핵 조사에서 잇따라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며 타격을 안겼다. 하원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탄핵 조사 절차 세부 사항을 규정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이달 중순부터 탄핵 조사 청문회가 생중계된다. 공화당은 대선 레이스 직전 탄핵 정국 직격타를 우려해 결의안 투표에서 기권 3명을 제외하고 194석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결정지을 결정적 변수가 ‘경제’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간 각종 막말과 기행, 동맹 경시 등으로 미국 안팎의 거센 비난을 받아왔음에도 그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경제 호조 덕이 컸다. 하지만 9, 10월 발표된 주요 경제지표가 잇따라 부진을 보였고 올해 3분기(7∼9월) 성장률도 1.9%(전기 대비·연율 기준)에 그쳐 트럼프 캠프에 불안감을 안기고 있다. 미국 경제는 올해 1분기에 3.1% 성장해 주요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을 기록했지만 2분기(2.0%)에 이어 3분기에도 계속 성장률 수치가 낮아지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미국 주식시장은 호조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독보적으로 앞서는 후보가 없는 데다 지지율 상위 후보군의 ‘본선 경쟁력’ 때문에 고민이 깊다. 현재 18명의 후보 중 지지율 ‘빅4’인 바이든, 워런, 샌더스, 부티지지 후보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양자 대결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바이든 전 부통령은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인한 부패 의혹, 워런과 샌더스 상원의원은 과도한 진보 성향 정책, 부티지지 시장은 빈약한 전국적 인지도 등으로 중도층 유권자 포섭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지난 대선 당시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세를 보였음에도 트럼프 후보에게 패했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72)의 악몽이 생생하다. 지지율이 앞서도 현직 대통령을 넘어설까 말까 한데 아직 지지율도 뜨뜻미지근하니 지도부의 속이 탈 수밖에 없다.

아예 출마 선언을 하지 않은 ‘제3의 후보’를 옹립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민주당 주요 인사들이 클린턴 전 국무장관,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77), 존 케리 전 국무장관(76),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인 미셸 오바마 여사(55) 등을 놓고 논의를 벌였다고 전했다. 다만 이런 후보군의 한계도 뚜렷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클린턴 전 장관과 케리 전 장관은 각각 2016년과 2004년 대선에서 이미 공화당 후보에게 패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인지도가 높지만 대중적 인기가 뜨겁지 않다. 오바마 여사는 공직 경험이 없고 정치인으로서 검증을 받지 못했다.


○ 제론토크라시에 대한 우려

트럼프 대통령, 민주당 유력 후보 3인방인 바이든, 워런, 샌더스, 민주당에서 제3의 후보로 거론하는 블룸버그, 케리, 클린턴 등이 모두 70대라 ‘노인 정치(Gerontocracy)’에 대한 우려도 높다. 현재 최고령 후보인 샌더스 상원의원은 최연소 후보인 부티지지 시장과 무려 41세 차이. 샌더스 의원은 9월 유세 행사 중 가슴 통증을 호소해 긴급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이후 지지율이 계속 하락세다.

부티지지 시장은 NYT 인터뷰에서 “미래 의제를 다루는 대선에서는 젊은 후보가 나서는 게 유리하다”고 70대 후보 3인방을 간접 비판했다. 급속도로 변하는 시대 변화를 반영하려면 세대교체가 불가피하며, 나이와 돈이 많은 ‘백인 남성의 상징’ 트럼프 대통령과 대적하려면 젊고 개혁적인 후보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특히 1960년 존 F 케네디(당시 43세), 1992년 빌 클린턴(당시 46세), 2008년 버락 오바마(당시 47세)의 사례에서 보듯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젊고 혁신적인 후보를 내세워 대선에서 승리했던 기억도 이런 세대교체 필요성을 제기한다.

샌더스 캠프 측은 최근 유명 래퍼 ‘카디 B’와 손톱 손질 가게에 마주 앉아 대선 공약을 토론하는 동영상을 제작했다. ‘물리적 나이와 상관없이 마음은 젊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전략이다. 이 동영상은 6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지만 건강 우려와 신선하지 않은 이미지를 불식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른 70대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NYT는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트럼프 대통령은 첫 부인 이바나와 혼인 상태였고, 워런 상원의원은 공화당 지지자였다”라고 꼬집었다. 보스턴글로브도 “1969년 인류가 달에 착륙했을 때 샌더스 상원의원은 20대 후반, 1987년 애플이 최초의 가정용 컴퓨터를 출시했을 때 바이든 전 부통령은 40대 중반이었다”고 가세했다. 이를 의식한 듯 민주당 후보 3인방은 내년 2월 전당대회 때 각자의 건강 기록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 치열한 ‘실탄’ 경쟁

양당 후보들 간 ‘쩐의 경쟁’도 관심사다. 미국 대선은 선거 유세 등 각종 행사의 진행 경비, 인건비, 광고비 등에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한 그야말로 ‘돈 선거’다. 부동산 사업가 출신 자산가인 트럼프 대통령은 현역 대통령의 이점을 누리며 모금 부문에서는 민주당 후보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순항하고 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등에 따르면 트럼프 캠프는 올해 3분기에만 1억2500만 달러(약 1460억 원)를 모았다. 3분기까지 누계로는 3억800만 달러를 모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에도 워싱턴 백악관 근처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에서 모금 행사를 벌였다. 이날 하루에만 1300만 달러를 쓸어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민주당 주요 후보들의 모금액을 압도하는 수치다. 3분기에 민주당 주요 후보 중 가장 많은 돈을 모은 샌더스 상원의원조차 2800만 달러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트럼프 대통령이 모은 돈의 22.4%밖에 안 된다. 워런 상원의원(2470만 달러), 부티지지 시장(1920만 달러), 바이든 전 부통령(1570만 달러) 등은 대통령과의 격차가 더 크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3분기 민주당에서 가장 많은 돈을 모은 후보는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의 억만장자 톰 스타이어 후보(72)다. 지지율은 하위권이지만 ‘투자의 귀재’답게 4960만 달러를 거둬들였다. 해리스 상원의원의 경우 최근 자금난으로 직원들을 대거 감원하겠다고 밝히는 등 경선을 완주할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핵심 경합지 플로리다 판세 관심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 전체 538명의 선거인단 중 306명을 차지했다. 과반인 270명 이상을 얻는 사람이 백악관의 주인이 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난번 승리했을 때와 비교해 36명의 선거인단을 잃어도 재선에 성공한다는 뜻이다. 반면 232명에 그쳤던 민주당 측은 최소 38명을 추가로 얻어야 한다.

간접 선거인 미국 대선 특성상 이번 대선도 2016년과 마찬가지로 소수 경합주가 백악관의 주인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잘 알려진 대로 캘리포니아, 뉴욕, 워싱턴, 버몬트, 매사추세츠, 오리건, 하와이, 코네티컷, 일리노이, 로드아일랜드주 등은 민주당의 텃밭이고 미시시피, 앨라배마, 사우스캐롤라이나, 켄터키, 루이지애나주는 공화당 텃밭이다. 후보에 관계없이 지지 정당이 확고한 주가 전체 50개 중 40여 개에 달하는 만큼 양당 모두 소수의 경합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혈투를 벌여야 한다.

NYT는 내년 대선의 핵심 경합지로 플로리다(29명), 펜실베이니아(20명), 미시간(16명), 위스콘신(10명)을 꼽았다. 의회 전문매체 더힐도 플로리다를 이번 대선의 판세를 좌우할 지역으로 지목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플로리다에서 49.0%를 얻었다. 클린턴 후보(47.8%)보다 불과 1.2%포인트 높았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2008년과 2012년 대선에서 각각 51%, 50%로 간신히 절반을 넘겼다. 이를 감안하면 내년 대선에서 누가 플로리다에서 이기든 그 차이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두 당 모두 플로리다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특히 2000년 대선에서는 개표 소송까지 거친 후 플로리다를 차지한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가 전체 득표율에서 앞선 앨 고어 민주당 후보를 물리치고 백악관 주인이 됐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6월 18일 재선 출정식을 플로리다주 올랜도 암웨이센터에서 가졌다. 9월에는 초강력 허리케인 ‘도리안’이 플로리다에 닥칠 것이란 예보에 예정됐던 폴란드 방문까지 취소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만큼 플로리다의 중요성을 인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 내년 3월 3일 ‘슈퍼 화요일’이 관건


본격적인 미국 대선은 내년 2월 3일 아이오와주에서 닻을 올린다. 두 당은 모두 이곳에서 당원대회(코커스)를 열고 8일 후 뉴햄프셔주에서 첫 예비경선(프라이머리)을 치른다. 코커스는 당원만, 프라이머리는 당원과 일반인 모두 참여할 수 있다. 아직도 18명이 난립하고 있는 민주당의 군소 후보들은 두 주의 결과에 따라 대부분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3월 3일은 가장 많은 주에서 동시 예비경선이 열리는 ‘슈퍼 화요일’이다. 538명의 선거인단 중 가장 많은 선거인단이 걸려 있는 캘리포니아(55명), 텍사스(38명)를 포함해 미네소타, 매사추세츠 등 총 15개 주에서 예비경선이 벌어진다. 이후 6월까지 나머지 주에서 예비경선이 이어지지만 민주당 대선 후보는 사실상 이때 확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은 내년 7월 13∼16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전당대회를 열고 대선 후보를 공식 지명한다. 민주당은 과거 민주당 표밭이었던 위스콘신을 지난 대선에서 잃었다. 당시 클린턴 후보는 위스콘신에서의 승리를 확신해 아예 이곳에서 유세를 하지 않았다. ‘집토끼’ 대신 ‘산토끼’에 올인하겠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10명의 선거인단이 걸린 위스콘신을 트럼프 후보에게 내줬고 백악관의 주인도 되지 못했다.

민주당은 왜 아픈 기억이 서린 이곳을 대선 후보 발표 장소로 택했을까.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20명), 오하이오(18명), 미시간(16명) 등 소위 쇠락한 산업지대(러스트벨트)에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각오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러스트벨트의 백인 노동계층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지지 기반이자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주역이다. 공화당은 내년 8월 24∼27일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서 전당대회를 연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후보로 추대할 것이 확실시된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 최지선·김예윤 기자
#미국#대선#트럼프#탄핵#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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