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최빈국 볼리비아에서부터 가장 부유한 나라 칠레까지. 중남미를 뒤덮은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어느새 3주째를 맞았다.
볼리비아에서는 13년 넘게 집권 중인 대통령이 대선 개표 조작 논란에도 승리 선언을 강행하자 분노한 시민들이 뛰쳐나왔고, 대중교통 요금 인상에 촉발돼 시위가 시작된 칠레 역시 2주 넘게 불길에 휩싸여 있다. 칠레는 급기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까지 포기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시위 3주차를 맞은 4일(현지시간) 칠레 수도 산티아고 시내 곳곳에서는 수만명이 모인 가운데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대는 “피녜라(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는 물러나라” “시위는 아직 안 끝났다”는 구호를 오치며 경찰의 물대포와 최루탄에 맞서 거센 충돌을 벌였다.
적은 임금과 연금에 비해 턱없이 높은 물가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시민들의 분노가 지하철 요금 30페소(약 50원) 인상과 함께 폭발하며 우파 피녜라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 전반에 대한 분노로 확산됐다.
칠레 검찰에 따르면 시위가 시작된 지난달 20일 이후 20명이 시위 과정에서 사망했으며 2600명 이상이 연행됐다.
피녜라 대통령은 지난주 야당과 회담을 통해 변화의 의지를 피력했으나 시위대의 분노를 잠재우지 못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시위대는 정책 수정이 아닌 대통령 퇴진과 개헌을 요구하고 있다. 현행 헌법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73~1990년) 군사 독재 정권 당시 제정된 것이다.
계속되는 시위에 경제적 피해도 커지고 있다. 지난 9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경제 성장률) 3%를 기록했던 칠레 경제는 10월 시위로 인해 0.5% 역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볼리비아에서는 지난달 20일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대선 승리 선언을 계기로 시위가 격화됐다. 2006년부터 집권한 모랄레스 대통령은 임기제한 규정과 2016년 국민투표를 무시하고 4선에 도전하면서 시위대의 분노를 샀다.
여기에 개표 조작 의혹이 제기되면서 분노가 더 커졌다. 처음 공개된 개표 결과에선 모랄레스의 연임이 위태로워 보였는데, 선거관리당국이 별다른 설명도 없이 개표 결과 업데이트를 24시간 동안 중단한 뒤 갑자기 모랄레스 대통령의 득표율이 높아진 것이다.
이에 야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선거 사무소에 불을 지르며 격렬히 항의했고,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심지어 볼리비아에서는 모랄레스 대통령이 탄 헬기가 이날 이륙 중 기계 오작동으로 비상착륙하면서 반정부 세력 쪽에서 대통령 제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가디언은 이에 대해 “33개국 6억 3000만명이 살고 있는 이 거대하고 이질적인 대륙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는 이유를 한 가지로 설명할 순 없다. 하지만 신흥 중산층의 양극화에 대한 불만과 부정부패에 대한 분노, 홍콩·카탈루냐 시위의 영향 등을 공통점으로 꼽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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