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장벽은 없다”…베를린 장벽 조각이 트럼프에 보내진 사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0일 16시 33분


“베를린 장벽이 왜 여기 서있지?”

9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앞 라파예트광장 옆 도로. 지나가던 시민들이 높이 3.6m의 콘크리트 덩어리로 된 장벽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30년 전 붕괴된 독일 베를린 장벽의 한 조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은 궁금증과 함께 장벽에 써진 글씨를 읽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트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베를린 장벽에 새겨져있기 때문이다.

9일(현지시간) 독일 dpa통신 등에 따르면 비영리 시민단체 ‘열린사회’(Die Offene Gesellschaft)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기념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장벽 조각 일부를 선물로 보냈다. 이들은 모금을 자금을 모은 후 3일 베를린 장벽 조각을 구입했다. 이후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일인 9일에 맞춰 이 장벽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새겨 넣은 후 백악관으로 보냈다. 사실상 ‘베를린 장벽 편지’인 셈이다. 보낸 이는 ‘베를린 시민’으로 돼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이 장벽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헌신해온 사실을 당신께 일깨우려 이 조각을 보냅니다. 베를린 장벽은 이제 조각으로 남았습니다. 그 어떤 장벽도 영원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존 F. 케네디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까지 미국은 이 장벽을 허무는 데 수십 년 동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현재 이 단체는 베를린 장벽 30주년을 맞아 장벽 없는 세상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장벽에 맞서는 장벽’(The Wall Against Walls)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멕시코 접경 지역에 이민자를 막기 위한 장벽을 만들어 중남미 국가로부터 유입을 막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메시지가 적힌 베를린 장벽을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나아가 일방주의와 고립주의를 주창하며 세계와의 소통을 거부하는 미국의 폐쇄성을 ‘벽’에 비유한 셈이다.

그러나 백악관은 장벽을 받길 거부했다. 이에 장벽은 백악관 인근 라파예트광장 가장자리에 임시로 놓여졌다. 열린사회 측은 “백악관이 계속 조각을 거부하면 조각을 가지고 미국 전역을 투어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 뿐만이 아니다. 베를린 장벽 30주년을 맞아 독일 정치권에서도 일방주의로 치닫는 미국의 변화를 촉구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3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1989년 11월 9일 장벽 붕괴 당시 소련의 봉쇄 정책에 맞서 서베를린을 지키며 독일 통일을 지원한 미국의 행보를 언급하며 “미국이 국가 이기주의에 맞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한 존중받는 동반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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