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로 기소돼도 美비자 발급… 反정부 홍콩학생 불이익 차단
왕이 “美정치인들 광기에 가까워”… 보복 경고 이어 격한 비난 쏟아내
“홍콩을 구해 달라, 법안에 서명하라(Save Hong Kong Sign the Bill)!”
21일 오후 2시경 홍콩 중심부 센트럴의 IFC쇼핑몰에 모인 300여 명 홍콩 시민들이 이렇게 외쳤다. 미국 상원에 이어 하원이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을 통과시키자 새로운 시위 구호가 등장한 것이다. 성조기를 흔드는 시위대도 있었다.
미국 하원은 20일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 등 홍콩 인권 보호와 시위대 지지를 위한 2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19일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인권법안은 하원에서 찬성 417표, 반대 1표로 가결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앞으로 10일 안에 법안에 서명할지, 거부권을 행사할지 결정해야 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서명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중국은 법안이 상원을 통과하자 20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해 법안이 발표되면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홍콩 인권법안이 미중 갈등의 새로운 불씨로 떠오른 것이다.
특히 법안 중에는 시위 참가로 체포되거나 기소된 학생의 미국 비자 발급을 허용한다는 내용이 담겨 주목된다. 폭동죄 등으로 기소되면 진학이나 취업에서 큰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한 시위대로서는 법안이 발효되면 활로가 생기는 셈이기 때문이다.
반면 홍콩 문제 개입을 내정 간섭이자 국가안보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한 중국 정부는 전례 없이 격분했다. 전날 외교부 등 7개 기관이 상원의 법안 통과를 적나라한 표현으로 비난한 중국은 21일에는 왕이(王毅)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앞세웠다. 왕 위원은 베이징(北京)에서 윌리엄 코언 전 미 국방장관을 만나 “일부 미국 정치인들이 광기에 가깝게 중국에 먹칠하고 공격하고 중상모략하는 것이 유감”이라고 말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전했다. 다만 중국 외교부의 공식 발표문에는 “광기에 가깝게”라는 표현은 포함되지 않았다. 타국 비난에 중국 정부 기관이 총동원된 것은 2012년 일본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국유화했을 때 이후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시위대 ‘최후의 보루’였던 홍콩이공대에서는 21일까지 1000여 명이 체포되거나 자수해 강경파 시위대 60여 명만 남았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10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5일간 고사 작전에 학교 곳곳에 숨은 시위대 대부분이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시위 동력은 상실했지만 일부가 “항복보다 죽음을 택하겠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어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시위대가 이공대 내 실험실 20곳에 침입했고, 이 중에는 폭발물질이 보관됐던 곳도 있다고 SCMP가 전했다.
홍콩=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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