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전 치닫는 美-中 무역전쟁… 세계경제 동반침체 주범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1일 03시 00분


[키워드로 보는 혼돈의 2019]<1> G2가 ‘마이너스2’로

미국과 중국이 세계 경제의 성장을 이끌던 ‘주요 2개국(G2) 시대’가 끝나고 두 나라가 세계 경제의 위기를 부추기는 ‘G 마이너스(―) 2’ 시대가 도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세계 교역과 경제 성장이 동반 증가하던 시대도 막을 내릴 것이란 분석이 제기됐다.

LG경제연구원은 10일 “2019년은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11년간 이어진 ‘세계 교역 증가율과 세계 경제 성장률의 증가세 동조화’가 깨진 원년(元年)”이라며 “향후 약 5년간 세계 교역 성장률이 세계 경제 성장률을 밑돌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10월 제시한 세계 경제의 올해 성장률과 교역 증가율 전망치는 각각 3.0%, 1.1%다. 지난해 이 수치는 나란히 3.6%였다. 2008∼2018년 동안 세계 교역 증가율과 성장률의 평균치도 모두 3.4%로 같았다.

하지만 올해 교역 증가율은 경제 성장률의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2007년과 2019년(전망치)의 수치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지난 12년간 세계 경제 성장률은 5.6%에서 3.0%로 2.6%포인트만 줄었으나 교역 증가율은 8.1%에서 1.1%로 7.0%포인트 급감했다. 그 이유로 무역전쟁, 보호무역, 제조업 위주의 세계 분업체제 약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교역 의존도가 낮은 지식집약적 산업의 급성장 등이 꼽힌다.

○ ‘G2’에서 ‘G 마이너스(―)2’

올해 7월 미국 경제전문가 아빈드 수브라마니안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과 조시 펠먼 JH컨설팅 이사는 국제전문 비영리매체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미국과 중국이 세계 경제에 ‘협력의 공공재’를 수출하는 대신 양국 경제정책이 ‘파멸적 결과’를 가져오는 ‘G ―2’ 시대가 도래했다”고 진단하며 이 용어를 처음으로 썼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미국은 양적완화 정책으로 막대한 돈을 풀었고 중국은 8%대 고성장을 바탕으로 각국의 수출 수요를 흡수했다. 반면 올해 양국은 첨예한 무역전쟁을 벌였을 뿐 아니라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중국의 성장 둔화 등이 세계 경제에 큰 부담을 안겼다. 수브라마니안 연구원과 펠먼 이사는 “미국과 중국이 서로의 상품에 관세와 무역 제한을 가하고, 미국이 다자간 무역규칙과 제도를 훼손함에 따라 세계 무역이 눈에 띄게 둔화되고 있다. 수출이 타격받는 개발도상국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해 3분기(7∼9월) 한국(0.4%), 독일(0.1%), 일본(0.4%), 영국(0.3%) 등 주요국 경제는 모두 0%대 성장을 기록했다. 한국과 독일은 각각 국내총생산(GDP)의 약 45%, 48%를 수출에 의존하기 때문에 무역전쟁의 피해가 특히 더 크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양국의 무역전쟁이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에 약 7000억 달러(약 834조2600억 원)의 피해를 줄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한 해 스위스 GDP와 맞먹는다. 미 CNBC는 양국 무역갈등이 경제 냉전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전 세계를 쪼개 놓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기 부천에서 반도체 후(後)공정 장비업체를 운영하는 A 사장도 1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회사 문을 닫을 판”이라고 한숨부터 쉬었다. 이 회사는 올해 매출 목표를 지난해와 같은 170억 원으로 잡았지만 11월 말까지 38%에 불과한 약 65억 원만 달성했다.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의 경기둔화 여파 때문이다. A 사장은 “이미 납품한 장비대금 10억 원을 받지 못했고 올해 중국발 주문도 지난해보다 약 30억 원 줄었다”며 “무역전쟁이 우리 같은 중소기업에도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지 몰랐다. 내년 계획을 짜야 하는데 인원 감축부터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 무역전쟁의 전선 확대

A 사장의 한탄은 미국과 중국이 세계 경제의 ‘위기 소방수’가 아니라 ‘위기 진원지’가 된 ‘G ―2 시대’의 단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G ―2 시대의 특징은 무역전쟁의 전선 확대, 소모전에 가까운 지루한 무역협상, 이에 따른 패권 경쟁 격화 및 불확실성 강화 등으로 요약된다.

현재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구글, 애플 등 미국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에 ‘디지털세’를 부과하는 문제로 미국과 중국 못지않게 대립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중남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철강 관세를 부과할 뜻을 밝혔고, 일본과 인도에도 농산물 관세를 위협하고 있다. 7월부터 시작된 한국과 일본의 반도체 분쟁도 현재진행형이다.

무역협상의 기간도 눈에 띄게 길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해 7월 서로에 보복관세를 부과한 직후부터 1년 반 동안 협상을 지속했지만 여전히 타결에 이르지 못했다. 미국과 일본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출범한 2017년 1월부터 무역협정 타결을 시도했지만 아직 합의문에 서명하지 못했다.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의 힘도 빠지면서 자유무역과 다자주의 질서도 흔들리고 있다. 특히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기조를 격렬히 비판하는 중국 또한 노골적으로 보호무역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블룸버그뉴스는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위협적인 보호무역 국가”라며 중장기 발전전략 ‘제조 2025’가 정부의 직접 보조금 지급, 공기업 동원 등 전형적인 보호무역 정책으로 점철됐다고 비판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간 국제 경제를 지탱했던 자유무역과 교역의 가치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G ―2 시대를 맞은 한국 경제의 생존법으로 아시아권에서의 활발한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을 조언하며 “원천기술 확보, 산업 고도화 등도 중요하지만 당장 현실화하기 어려운 만큼 FTA가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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