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 vs 밀레니얼 세대’ 연금-일자리 놓고 갈등 폭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6일 03시 00분


[키워드로 보는 혼돈의 2019]
<4> 제로섬 복지(Zerosum Welfare)

이탈리아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의 창립자인 베페 그릴로는 올해 10월 “노인의 투표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다소 극단적 주장을 내놨다. 이탈리아는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전체 인구의 22%로 일본(28.4%)에 이어 세계 2위인 나라다. ‘노인 폄훼’ 비판에도 그릴로는 꿋꿋이 이 주장을 고수한다. 12일 영국 조기총선과 2016년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찬반 국민투표 때도 세대 갈등 양상이 뚜렷했다. 젊은층은 취업 유학 등을 이유로 EU 잔류를 택했지만 반(反)이민 정서가 강한 장·노년층은 ‘EU 탈퇴’에 몰표를 던졌다.

올해 각국에서는 일자리, 연금, 복지 혜택 등 한정된 자원으로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가 갈등을 벌이는 ‘제로섬 복지(Zerosum Welfare)’ 양상이 뚜렷했다. 한 세대의 혜택을 유지하거나 늘려주면 다른 세대의 복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특히 고령화로 노년층이 과거보다 더 오랜 기간 연금과 복지 혜택을 누리는데 자신들은 받는 게 없다는 젊은층의 불만이 커졌다. 이들의 불만을 줄이려면 연금 수급연령을 올리고 연금액을 줄여야 하나 이에 대한 노년층의 반발과 저항도 만만치 않다. 각국 지도자도 이 문제를 차일피일 미뤄 갈등만 증폭되고 있다.

11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연급 수급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올리는 연금개혁안을 발표했다. 1995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2010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연금을 손보려 했지만 노조와 노령층의 반발로 정치 위기에 직면했고 결국 실패했다. 이번에도 노동계는 즉각 파업에 돌입했고 “성탄절까지 파업을 이어 가겠다”고도 밝혔다.

이런 갈등의 바탕에는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됐다”는 젊은층의 좌절이 있다. 지난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밀레니얼 세대(1981∼1997년생) 남성의 평균 소득이 X세대(1965∼1980년생)보다 27%, 부모인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생)보다 18% 적다”고 밝혔다.

2016년 프랑스의 65세 이상 고령층 수입은 근로자 평균 소득의 102%로 2008년 86%보다 16%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스페인과 영국에서도 모두 비슷한 상황이 나타났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젊은 근로자들의 임금 증가는 정체된 반면 은퇴한 연금생활자의 소득은 꾸준히 오른 결과다. 조지프 스턴버그 미 월스트리트저널(WJS) 칼럼니스트는 올해 5월 ‘도둑맞은 10년: 어떻게 베이비부머가 밀레니얼 세대의 경제적 미래를 훔쳤나’란 자극적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그는 “학자금 대출 빚에 허덕이는 젊은층은 일자리를 구하는 것조차 어렵다. 베이비부머들은 4달러짜리 커피를 마시고 8달러짜리 아보카도 토스트 브런치를 먹으며 ‘돈을 모으기 어렵다’고 불평한다”고 지적했다.

기성세대의 기회 독점에 대한 불만은 반자본주의 정서로도 이어진다. 3월 미 여론조사회사 갤럽에 따르면 18∼29세 미국인의 51%가 “사회주의에 긍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답했다. ‘자본주의에 긍정적’이란 답은 45%에 그쳤다. 2010년 첫 조사 이후 자본주의를 긍정한다는 답이 50% 이하로 내려간 것도 올해가 처음이다.

같은 또래인 밀레니얼 세대 정치인에게 표를 던지는 젊은 유권자도 늘어나고 있다. 10일 핀란드에서는 세계 최연소 총리인 산나 마린 (34)을 포함해 19명의 장관 대부분이 3040세대인 ‘밀레니얼’ 내각이 출범했다. 2017년 31세 나이로 집권한 후 올해 5월 사퇴했지만 넉 달 뒤 조기총선에서 또 승리한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국민당 대표(33)도 조만간 연정 구성을 마치고 또 총리에 오른다.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자리, 주택 등에서 기회를 박탈당한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와 적극 맞서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박성민 min@donga.com·신아형 기자

#제로섬 복지#밀레니얼 세대#베이비붐 세대#일자리#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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