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이라크, 레바논, 알제리, 칠레, 홍콩, 스페인, 프랑스, 에콰도르, 아이티, 온두라스, 카자흐스탄, 파키스탄…. 올해 세계 곳곳에서는 불평등 타파와 체제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대거 거리로 몰려나오는 시민 봉기(Civil Disorder)가 활발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2019년을 ‘거리 시위대의 해(the year of the street protester)’라고 진단한 이유다.
시위 여파로 볼리비아, 이라크, 레바논, 알제리에서는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 혹은 총리가 물러났다. 9월 홍콩 구의원 선거와 11월 스페인 총선에서도 모두 현 집권 세력과 대립각을 세운 반중 정치인과 극우 정당이 몰표를 받았다.
이들은 왜 뛰쳐나왔을까.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한결같이 경제적 불만이 깔려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적했다. 가뜩이나 먹고살기 힘든데 불평등까지 심해지니 “못 살겠다, 갈아 보자”는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는 뜻이다.
시민들이 기성 정치권이 내세우는 해법으로는 결코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고 느낀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리처드 영 미 카네기 국제평화센터 연구원은 WSJ에 “시위대가 정치적 해결책이 아니라 더 직접적인 행동을 선택하는 현상은 일회성이 아니다. 세계 정치의 주류가 될 것”으로 진단했다.
특히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시민 봉기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010년 12월 북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튀니지에서 발원한 민주화 운동이 북아프리카와 중동 전체를 물들인 ‘아랍의 봄’으로 번진 이유는 해외 거주 국민들이 온라인으로 자국의 시위 소식을 널리 퍼뜨렸기 때문”이라며 올해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물리적으로 시위 현장에 없지만 온라인에서 관련 소식을 전하고 퍼 나르는 것만으로도 연대와 결속을 느끼는 사람이 늘었다는 뜻이다. 온라인에서 손쉽게 상위 1% 부자의 소식을 접하면서 빈부 격차에 대한 불만도 급속도로 커졌다.
텔레그램 같은 암호화된 메신저도 시위 규모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 6월 9일부터 반년 넘게 반중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홍콩 시위대는 텔레그램 단체방을 통해 무장경찰의 위치를 공유하고 도망치는 ‘히트앤드런’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 ‘카탈루냐 독립’을 외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지역의 시위대도 텔레그램에서 다음 게릴라 시위 장소를 긴급 공지하며 경찰을 따돌렸다.
이 같은 정보기술(IT)의 급격한 발달로 각국 10대들이 시위의 최전선에 등장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10월 초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으로 촉발된 칠레 시위는 교통비에 민감한 고등학생들이 지하철 개찰구를 뛰어넘어 공짜로 지하철을 타는 ‘항의 퍼포먼스’를 벌이면서 전국적 시위로 비화했다. 레바논 시위도 자신들이 즐겨 쓰는 ‘왓츠앱’ 메신저에 세금을 부과한다는 사실에 분노한 청년층이 주도했다. WSJ는 “스마트폰에 중독된 청년들이 온라인에서만 활동할 것이라는 기존 시각을 완전히 뒤집었다”고 진단했다.
올해 각국 반정부 시위를 ‘주변부에서의 반란’이라고 진단한 영국 분쟁전문 싱크탱크 옥스퍼드리서치그룹(ORG)은 “이런 현상이 향후 30년간 국제사회를 뒤흔들 의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랍의 봄’에서 발발한 시리아 내전이 2011년부터 8년째 지속되는 점을 감안할 때 다른 나라의 시위도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시위대의 요구가 적절하게 수용되지 않으면 종교적 극단화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한다. ‘아랍의 봄’으로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실각했지만 이후 내내 경제난이 계속된 이집트에서 실권을 잡은 세력은 시아파 급진단체 무슬림형제단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일은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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