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미국이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살해한 가운데 미국측이 공식적으로 ‘암살’이라는 표현 대신 ‘사살’이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대통령의 지시로 솔레이마니를 사살함으로써 해외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한 결정적 방어조치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눈길이 가는 대목은 미측이 ‘사살’을 했다고 표현한 것이다. 사살의 사전적 정의는 무기로 총이나 그밖에 사격 무기를 사용하여 사람을 쏘아 죽이는 것을 말하는데 미국의 행위는 엄밀히 말하면 사살보다는 암살로 볼 수 있다.
암살은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을 정치·사상적 이유 때문에 비합법적으로 몰래 살해하는 행위를 뜻하는데 미군은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을 공습해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제거했기 때문에 암살이라는 단어가 더욱 적당하다.
그러나 미국은 암살이라는 표현을 이후로도 쓰지 않으며 의도적으로 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미국의 국내법과 연관이 있다. 1981년부터 미국 연방법률에 따라 암살이 불법으로 규정돼있기 때문에 미국 관리들은 암살이란 표현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기범 아산정책연구원 국제법센터장은 8일 TBS 라디오에 출연해 “1970년대에 미국 행정명령에는 그 어떤 사람도 미국 정부의 이름으로 암살에 개입하거나 모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있다”며 “미국이 이제껏 암살을 했다고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은 2011년 이슬람 무장단체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한 뒤 “교전 중에 사망했다”고 표현했으며 이 외에 ‘참수 작전’의 경우에도 암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타국에서 선제적으로 무력을 쓰는 것에 대한 일각의 비판을 피하려 하는 모습을 취했다.
그래서인지 미국은 솔레이마니 사령관 살해는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캘리 크래프트 주유엔 미국 대사는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보낸 서한에서 “솔레이마니의 죽음은 유엔 헌장 제51조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크래프트 대사는 “솔레이마니를 암살하고, 지난달 29일 이란의 지원을 받는 민병대를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공습한 것은 최근 몇 달 동안 이란과 이란이 지원하는 무장단체들이 미군기지를 공격한 데 대한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유엔 헌장 제51조는 무력공격이 발생한 경우,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14년 시리아에서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대원을 격퇴했을 때도 이 조항을 근거로 들었다.
다만 이란에서는 솔레이마니의 죽음에 대해 미군 측의 암살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으며 무력공격이 발생하지 않았는데 먼저 타국에서의 무력사용을 한 것이 유엔 헌장을 어긴 것이라는 평가도 곳곳에서는 나오고 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의 히나 샴시 국가안보프로젝트 국장은 “무력사용이 매우 제한된 상황에서만 허용되는 국내·국제 법적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사건에 대해 독립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그네스 칼라마르드 유엔 특별보고관은 “지금까지의 정보만으로는 이번 공습이 무력 사용에 관한 유엔 헌장에 위배되는지를 판단하기 어렵다”며 조사를 촉구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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