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은 1월 8일 미군 기지가 있는 이라크 아인 알아사드와 2003년 이라크전쟁 때 우리 특전여단을 중심으로 임시 편성된 자이툰부대가 주둔했던 아르빌을 향해 장거리지대지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러나 두 곳에 있던 미군은 전혀 미사일 피해를 입지 않았다.
유엔군이 아닌 다국적군을 만드는 이유
중동은 갈등이 많은 곳이라 여러 차례 다국적군이 만들어졌다.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격퇴했던 1991년과 9·11테러를 당한 미국이 테러 세력이 숨어 있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2001년, 미국이 이라크전쟁을 치른 2003년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도 그곳에는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퇴치를 목표로 하는 다국적군 사령부와 우리 해군 청해부대가 소속돼 해적 퇴치 작전을 벌이는 다국적군 사령부가 가동되고 있다.
이란의 응전과 미국의 대응은 대(對)이란전을 위한 새로운 다국적군 편성을 요구할 수 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호르무즈해협에 파병해달라며 한국에 다국적군 참여를 요청한 바 있으니,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한국은 조만간 답을 해야 하는 처지다. 이러한 압박은 북핵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게 큰 숙제가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을 잡으면 미국이 떠나고, 미국을 잡으면 북한이 발끈하는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한미동맹의 성격을 변화시키려 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이 독단적으로 북한과 전쟁하는 것을 막고자 한미연합사령부(한미연합사) 해체를 전제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추진해왔다. 그 결과로 한미동맹이 와해되거나 약해지는 것으로 비치면 안보가 흔들릴 수 있다.
한미연합사는 2만 명 넘는 주한미군을 대북용으로만 사용하도록 한정해놓은 체제다. 미국은 주한미군은 다른 용도로도 사용하고자 했기에 전작권 전환에 찬성해왔다. 그 결과 노무현 정부가 찾아낸 합의점이 경기 평택에 새로운 주한미군 기지를 만들어 한국 이북에 전개돼 있는 주한미군을 모아놓는 것이었다.
한반도 안정화를 위한 고육지책
한강 이북에 자리한 주한미군은 북한의 장거리포 사격을 받을 수 있고, 이들이 공격받으면 미국은 즉각 대응이 가능하다. 미국은 제2의 6·25전쟁에 자동 참전하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었어도 미국은 의회 동의가 있어야 미군을 추가 파병할 수 있는데 한강 이북의 주한미군이 피격을 받으면 그러한 절차 없이 바로 파병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미군 증파를 보장하는 ‘인계철선’으로 불리며, 한국 안보를 지켜주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북한의 작은 도발을 이유로 미국이 확전하는 도구로 쓸 수도 있다. 노무현 정부는 이 위험성을 없애고자 평택기지 건설을 결정해 한강 이북의 주한미군을 모이게 했다. 미국이 북한의 작은 도발을 이유로 자동 참전하고 한미연합사를 통해 전작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를 줄이는 인프라를 만든 것이다. 이는 한미동맹 약화가 분명하다. 이 때문에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보이고자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던 것이다.
이 파병에 깊이 개입했던 이종석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은 저서 ‘칼날 위의 평화’에 ‘한미관계 안정을 위해 미국의 이라크전쟁에 지지를 보냈다’고 써놓았다. 그러나 이 결정은 뜻밖의 일로 난관에 봉착했다.
기독교 선교를 겸해 위험지역인 이라크 바그다드에 거주하던 김선일 씨가 반미조직에 납치돼 무참하게 살해된 것이다. 2002년 북한은 우라늄 농축을 시인하고 미국은 제네바합의를 파기함으로써 제2차 북핵 위기가 닥쳤다. 그러자 미국은 지금처럼 북폭을 검토했다. 노무현 정부는 그러한 미국을 주저앉히기 위해 미국이 요구한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는데, 김씨 피살사건으로 국민 여론이 결정적으로 나빠진 것이다.
북한이 바라는 바는 북한에 협조적인 한국 정권이 들어서는 게 아니라, 한국이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김씨 참수사건으로 노무현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됐고, 이것이 북한으로서는 위기를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이란과 미국의 대결이 문재인 정부를 비슷한 상황에 빠지게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이 조선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정면 돌파’와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는데도 신년사에서 또다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 대통령은 만난(萬難)과 오해를 무릅쓰며 한반도에서 북·미가 대립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게 애쓰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미국을 억제하고 있으니 그는 미국에 뭔가를 줘야 한다.
미국은 이를 꿰뚫어봤기에 일본과 함께 추진하는 중국 포위 전략인 인도태평양전략에 한국의 참여를 요구했다. 문재인 정부는 신남방정책을 내세워 완곡히 거절했다. 그리고 양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과 한국의 신남방정책은 유사점이 있다며 그 접점을 찾는 노력을 해왔다. 인도태평양전략은 전형적인 외교안보전략이고 신남방정책은 경제문화정책이라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도, 한미동맹의 건재를 보여주는 행동을 하기로 한 것이다.
신남방정책과 인도태평양전략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국으로 온 원유와 가스 수송선 중 75%가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호르무즈해협의 안정은 한국 경제에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 미국은 이를 근거로 한국군을 호르무즈해협으로 파병해달라고 했다. 한국과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하고 있는 제임스 드하트 미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 대표는 “호르무즈해협에서 한국을 위해 활동하는 미군도 있지 않는가”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군이 호르무즈해협을 지켜준 덕분에 한국 경제가 돌아가고 있으니 그것에 대한 책임을 다하라고 우회적으로 압박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미국 측 요구에 우호적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5배나 많아진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요구를 낮추고 미군 단독의 대북작전을 막고자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긍정적으로 검토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따져본 것이 소말리아 해적 퇴치 작전에 참여하고 있는 청해부대를 호르무즈해협으로 옮기는 일이다. 청해부대는 리비아 사태 때 원 작전구역인 인도양을 벗어나 지중해에서 작전을 수행한 바 있다. 현재 해적 퇴치 작전의 규모가 줄었으니 문재인 정부는 이 부대에게 호르무즈해협 작전을 추가하는 것으로 대응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검토를 한 것 같은데 이란의 가셈 솔레이마니 폭사와 미사일 대응으로 갑자기 호르무즈해협의 위협이 폭증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결정한다면 정부를 지지해온 세력들이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이란에 미사일을 판매해왔으니 문재인 정부와 대화를 더욱더 거부할 수도 있다. 그뿐 아니다. 김선일 씨 사건처럼 제3국을 무대로 이상한 테러사건이 일어나 문재인 정부는 오도 가도 못 하는 처지가 될 수 있다.
이에 일본의 대응을 참고하자는 의견이 나오는데, 이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은 인도태평양전략을 만든 당사국인 만큼 미국의 요구에 적극 호응한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만들어준 평화헌법에 따르면 자위대는 일본이 공격받았을 때만 대응할 수 있도록 한정돼 있고 평시에는 미군을 지원하는 역할만 할 수 있으니, 호르무즈해협에 파병해도 미군을 지원하는 역할만 하게 된다. 전투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일본은 생색만 내고 부담을 피해갈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우리가 불리해지면 미국의 지원을 받고, 미국이 곤란해지면 미국을 도와준다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었으니 전투를 피해갈 수 없다. 전투부대를 파병해야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낮추고 북한과 충돌을 초래할 압박도 낮출 개연성이 높다. 한국은 고육지책을 선택한 것인데 북한은 이를 기화로 문재인 정부가 아닌 대한민국 흔들기를 할 것이 분명하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위기를 넘어 한국의 위기로 귀착될 공산이 크다.
한미동맹의 성격을 바꾸면서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보여야 하는 딜레마를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산토끼 잡으려니 집토끼가 대량 탈출하고, 집토끼를 가둬두려니 산토끼가 집단으로 습격하는 초유의 위기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안보정책은 처절한 시험을 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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