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軍 “적의 순항미사일로 오인”… 공포감-통신불안 겹쳐 참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3일 03시 00분


이란, 우크라 여객기 격추 시인

이란의 민간 여객기 격추 사건은 미국과의 전면전이 벌어질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낙후된 방공망, 미사일 운용 요원의 오판, 원활하지 못한 통신 체계, 영공 폐쇄 및 민간항공기 운항 제한에 나서지 않은 이란 정부의 판단 착오 등에 따른 대형 참사란 분석이 나온다.

○ 이란 “사람의 실수로 격추”

이란은 미사일 운용 요원의 실수로 해당 여객기를 미국 또는 미 우방국의 미사일이나 전투기로 착각했다는 취지의 해명을 내놓고 있다. 이란군이 고의로 여객기를 격추했을 가능성은 아주 낮다. 이 여객기 탑승자 176명 가운데 82명은 이란인이고 57명의 캐나다인도 대부분 이란과 이중국적자이기 때문이다.

각국은 중앙방공통제소(MCRC) 같은 공군 감시기구를 통해 자국의 영공 등 공역을 오가는 항공기를 식별 및 추적한다. 군 관계자는 “모든 민항기는 비행 중 발신 장치(트랜스폰더)로 기종, 항적 등의 정보를 표시한다”며 민항기를 전투기나 미사일로 오판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사건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 아미르 알리 하지자데 혁명수비대 대공사령관은 “운용 요원이 (해당 여객기를) 19km 떨어진 지점에서 날아오는 ‘순항미사일’로 판단했다. 해당 요원은 위협에 대응하는 지시를 받으려 했는데, 당시 통신 시스템이 원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여객기를 미사일로 착각한 건 미사일 운용 요원의 단독 판단이었으며 그가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은 10초뿐이었다”고 밝혔다.

호주의 민간 항공연구소 에어파워오스트레일리아의 칼로 콥 대표는 포브스에 “SA-15(토르) 미사일의 사거리와 여객기의 비행 속도를 감안할 때 미사일 발사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는 1분 53초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토르의 레이더 시스템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토르의 레이더는 표적의 고도, 비행 속도, 궤도 등만 포착할 뿐 그 종류와 크기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란군이 미국의 공습에 대비해 아군 이외의 표적은 포착 즉시 발사되는 ‘자동 모드’로 토르를 운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다.

서방의 오랜 제재로 이란군이 레이더를 포함한 대공망 장비를 제대로 구비하지 못해 급박한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중동 소식통은 “대공망과 공군 전력은 미국과 서유럽 등 무기 선진국과 그렇지 않은 나라의 수준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슬람국가(IS) 격퇴전 등으로 이란의 지상전 경험은 풍부하지만 비(非)지상전 경험은 거의 없다. 대공망 장비도 부족하지만 이를 운용하는 인력의 훈련 및 경험도 부족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양욱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란이 겉으로는 결사항전을 외치면서도 미군의 공습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 유례없는 초긴장 상황에서 나온 대형 실수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사고 여객기가 소속된 우크라이나항공 측은 “미국과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이란이 영공을 개방하고 비행을 허가한 것은 무책임하다”고 비난했다. 우크라이나 장성 출신의 군사 분석가 이호르 로마넨코는 AP통신에 “군사 분쟁이 고조된 국가는 (안전을 위해) 민항기 운항을 금지해야 한다”며 인력 및 물자 이동 제한에 따른 금전적 손실 등을 우려한 이란 정부가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이번 사태를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정부 위의 정부’로 불리는 혁명수비대가 이란에서 광범위한 권한을 가지고 있어 이들을 견제할 세력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미사일 발사 같은 중대한 결정을 독단적으로 자행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 피격 위험 피해 우회하는 항공업계

국내 항공업계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와 터키 이스탄불 등 중동을 오가는 항공편이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국적 항공사 중에 이란 영공을 지나는 노선은 없다. 하지만 두바이와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중요한 환승 거점이어서 피격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전반적인 여객 수요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인천국제공항에서 두바이로는 대한항공과 에미레이트항공이 주 7회, 이스탄불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각각 주 4회, 터키항공이 주 11회 취항 중이다.

대한항공의 인천∼두바이 노선은 당초 중국 및 파키스탄 영공을 통과한 후 이란 남부 오만만을 거쳐 두바이로 들어갔다. 대한항공은 중동 긴장이 고조되자 이란 부근의 오만만에서 더 남쪽으로 우회하는 항로로 변경해 운항하고 있다. 기존보다 10분 정도 더 소요되지만 이란에 인접한 오만만을 피해 안전을 강화하려는 조치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윤상호 군사전문기자·변종국 기자
#이란#우크라이나#여객기 격추#미국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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