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개각과 함께 의회·내각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하겠단 의사를 밝혀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러시아 야권과 전문가들로부턴 푸틴 대통령이 오는 2024년 퇴임 뒤에도 총리 등 다른 직책을 맡아 러시아의 ‘최고 실권자’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포석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관영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국가두마(하원)에서 한 2020년 새해 국정연설을 통해 하원에 총리 등 내각 임명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은 이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방향을 개헌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현행 러시아연방 헌법에선 대통령이 총리를 지명하면 하원은 이를 인준하는 역할만을 맡고 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하원에 총리 후보 지명뿐만 아니라 결정까지 모두 맡길 것을 제안한다”며 “이 같은 개헌이 이뤄지면 의회·정당의 역할과 중요성, 그리고 총리의 독립성과 책임이 증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번 개헌 제안은 외견상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는 연방정부 인사권 가운데 일부를 입법부에 넘기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헌법상 ‘대통령 3연임 금지’ 조항 때문에 4년 뒤 물러나야 한다는 점, 그리고 현재 그가 이끄는 통합러시아당이 하원 전체 450석 가운데 341석(75.8%)을 차지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이번 개헌안엔 푸틴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의회와 내각을 통해 국정에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00년 당시 4년 임기의 대통령에 당선돼 2008년까지 연임하다 헌법상 ‘3연임 금지’ 조항 때문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그는 총리직을 수행한 뒤 2012년 선거를 통해 임기가 6년으로 늘어난 대통령직에 복귀했고 2018년 연임에 성공했다.
푸틴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던 2008~12년에도 계속 ‘실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 시기 대통령을 맡았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푸틴을 총리로 임명했기 때문이다. 푸틴의 최측근인 메드베데프는 2012년 푸틴이 재집권한 뒤론 총리직을 수행해왔다.
이런 가운데 메드베데프 총리는 이날 푸틴 대통령의 국정연설 뒤 “대통령이 필요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내각 총사퇴 의사를 밝혔고, 푸틴 대통령은 그의 사퇴를 기다렸다는 듯 미하일 미슈스틴 연방국세청장을 새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그러자 러시아 야당 진보당 소속의 레오니드 볼코프는 “누가 봐도 푸틴이 평생 (러시아를) 통치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비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현재 ‘2회까지 연임(連任)’할 수 있는 대통령직을 ‘2회까지 중임(重任)’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바꾸자고도 제안, 앞으론 자신과 같은 장기 집권자가 나오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 싱크탱크 ‘R폴리티크’의 타티아나 스타노바야 대표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푸틴의 개헌 제안엔 하원뿐만 아니라 국가평의회(대통령 자문기구) 권한 확대에 관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며 “푸틴이 퇴임 후 국가평의회 의장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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