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숄티 "말도 안되며 부도덕한 생각"
필 로버트슨 "정치현실과 동떨어진 엄청나게 급진적 발상"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신년사와 신년 기자회견에서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추진 방침을 천명한 것과 관련해 미국 언론의 부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19일(현지시간) ‘북한은 2032년 올림픽을 공동 개최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여전히 믿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현재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평가는 선지자적이라는 평가부터 어리석다는 평가까지 엇갈리고 있다(So far, the reviews range from visionary to foolish)”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는 남북이 한민족임을 세계에 과시하고, 함께 도약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며 남북 협력 확대를 위한 세부 방안으로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등을 제안했다. 그는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남북 정상이 합의한 사항이라며 공동 개최 의지를 거듭 천명했다.
남북 정상은 지난 2018년 9월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열어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등에 합의했다. 남북은 다음해 2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국제 올림픽위원회(IOC) 회의에서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의사를 밝혔고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한반도와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며 환영한 바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간 하노이 정상회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뒤 남북 관계는 ‘붕괴(disintegrated)’된 상태로 북한은 현재 남한과 대화를 거부하고 관영 매체를 통해서만 경멸과 조롱조 논평을 내놓고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WP는 남북간 신뢰가 무너지고 대화가 닫힌 상황이지만 문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그의 낙관주의가 평화를 위한 역사적인 기회를 만들어냈다고 옹호하지만 비평가들은 그의 낙관주의는 순진한 것으로 북한의 인권 유린에 대해 침묵하는 것을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고 부연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비정부기구 디펜스포럼 회장 수전 숄티는 WP에 “그것은 말도 안되는 생각이고 부도덕한 생각(It’s a ridiculous idea ? and it’s immoral)”이라고 비난했다.
탈북자 지원과 북한 인권 개선 등에 매진해온 그는 “두 나라가 함께 올림픽 유치 신청을 하는 것은 북한 주민을 상대로 매일 자행되고 있는 잔학한 행위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독재국가인) 북한과 같은 자리에 서는 자청함으로써 민주 공화국인 한국의 위상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지구상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한국의 대통령 보다 북한 주민들에 대해 더 큰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며 “그런데 문 후보는 그들의 고통에 등을 돌렸다”고도 꼬집었다.
WP는 지난해 10월 평양에서 치러진 남북한간 남자 월드컵 예선전 경기가 북한 당국의 통제로 무관중 경기로 치러진 점,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평양을 방문했다가 억류돼 혼수상태로 귀국한 점 등을 언급하면서, 전문가들은 올림픽이라는 대규모 행사를 공동 개최할 수 있을 만큼 남북 관계가 수년간 안정적일 것이라는 생각과 전 세계 언론과 관중들이 올림픽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헛된 기대(pie in the sky)’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필 로버트슨 휴먼라이츠워치 아시아 담당 부국장은 WP에 “문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는 ‘비현실적인 세계(la-la land universe)’에 빠져 있다”며 “그의 제안은 현재 정치 현실과 완전히 동 떨어진 끝없는 햇볕 정책 낙관론에 근거한 엄청나게 급진적인 발상”이라고 했다.
WP는 올림픽이 과거에도 ‘우려스러운 영역’에 놓였던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1936년 나치 독일에서 개최된 올림픽은 아돌프 히틀러의 체제 선전 용도로 악용됐고, 2008년 중국에서 열린 올림픽은 인권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는데 이용됐다는 것이다.
IOC가 2032년 올림픽 개최지를 2025년까지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치범 수용소를 운영하고 강제 노동에 의존하는 북한은 인종과 피부색, 성별, 성적 지향, 언어, 종교, 정치 등의 차별을 금지하는 올림픽 헌장을 준수하기 위해 고분분투 해야할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헤리티지재단 한국 전문가인 브루스 클링거는 문 대통령이 남북 협력의 모멘텀을 되찾기 위해 이중 잣대를 내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는 (백인 우월주의 정책을 구사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올림픽에서 배제했지만 더 심한 인권 유린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포용하려고 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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