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이란 웬 말인가”… 올드랭사인 부르며 英 떠나보낸 EU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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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총회, 브렉시트 합의안 승인

브렉시트에도 英야당은 ‘하나의 유럽’ 외쳐 2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의회 총회에서 브렉시트 최종 승인 투표 결과가 나오자 영국 노동당 소속 리처드 코벳 유럽의회 의원(가운데)이 ‘늘 하나다(Always United)’는 문구와 영국 국기, 그리고 유럽연합기가 그려진 목도리를 펼쳐 보였다. 이날 총회에 참석한 영국과 EU 회원국 의원들은 이별 곡인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석별의 정)을 합창하는 등 눈물과 환호로 영국의 EU 탈퇴를 기념했다. 브뤼셀=AP 뉴시스
브렉시트에도 英야당은 ‘하나의 유럽’ 외쳐 2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의회 총회에서 브렉시트 최종 승인 투표 결과가 나오자 영국 노동당 소속 리처드 코벳 유럽의회 의원(가운데)이 ‘늘 하나다(Always United)’는 문구와 영국 국기, 그리고 유럽연합기가 그려진 목도리를 펼쳐 보였다. 이날 총회에 참석한 영국과 EU 회원국 의원들은 이별 곡인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석별의 정)을 합창하는 등 눈물과 환호로 영국의 EU 탈퇴를 기념했다. 브뤼셀=AP 뉴시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29일 벨기에 브뤼셀 유럽의회 총회장에 이별을 주제로 한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이 울려 퍼졌다. 의원들은 유럽연합(EU)과 영국이 지난해 10월 합의한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합의안을 전체 750석 중 찬성 621표, 반대 49표로 비준했다. 이 외 기권 13표, 불참 등이 67표였다. 이에 따라 영국은 31일 오후 11시(한국 시간 2월 1일 오전 8시) EU와 공식적으로 이혼한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 후 3년 7개월, 영국이 1973년 EU의 전신 유럽경제공동체(EEC)에 합류한 지 47년 만이다. 영국은 1993년 출범한 EU 체제의 첫 탈퇴국이다. 회원국 수도 기존 28개국에서 27개국으로 줄었다.

○ 11개월의 험난한 협상… 노딜 공포 커져


영국과 EU는 브렉시트 충격을 줄이기 위해 올해 12월 31일까지 현 상태를 유지하는 이행(준비) 기간을 갖는다. 이 기간에 영국은 EU의 단일 시장 및 관세동맹에 남는다. 그 대신 향후 11개월 동안 무역, 안보, 이민, 교통, 교육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협상을 벌여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기로 했다. ‘이혼합의금’으로 불리는 300억 파운드(약 46조 원)의 분담금은 2060년까지 EU에 분할 지급한다. 문제는 11개월 만에 방대한 협정을 마무리할 수 있느냐다. 영국은 올해 말까지 EU 주요 회원국과 각각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일반적인 FTA 체결에도 2, 3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이 EU 회원국이 아닌 168개국과도 750개 이상의 협약을 맺어야 한다”고 추산했다.

영국은 ‘EU의 규제와 기준을 따르지 않되 브렉시트 전처럼 무관세·무쿼터를 사수하겠다’는 입장이다. EU는 ‘영국이 EU 규제를 수용하지 않으면 무관세 혜택을 줄 수 없다’고 맞선다. 또 EU는 영국 수역에 대한 회원국 어선의 자유로운 접근 및 농산물 수출 허용 등을 바란다. 영국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양측은 협상 시한에도 이견을 보인다. EU는 ‘11개월 안에 타결이 불가능하다. 올해 6월 말 전에 기간 연장에 합의하고 2022년까지 협상을 벌이자’고 주장한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지난해 12월 기간 연장을 불허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전환 기간 내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영국이 EU 관세동맹 및 단일 시장에서 탈퇴하면 사실상의 ‘노딜 브렉시트’(합의안 없는 EU 탈퇴)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 EU·영국 모두 손해, 영국 사회 갈등도 격화

브렉시트 자체가 영국과 EU 양측 모두에게 큰 손해라는 분석이 나온다. 둘 다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및 지위 약화가 불가피한 탓이다. 뉴욕타임스(NYT)는 “EU가 영국을 잃은 것은 미국이 텍사스를 잃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진단했다. 텍사스는 미 50개 주(州) 중 면적이 가장 넓다.

영국은 현재 EU 국내총생산(GDP)의 12%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에 이어 두 번째다. 인구(약 6700만 명)도 EU의 13%에 달한다. 영국 없는 EU의 영향력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브렉시트 후 EU 27개 회원국의 합산 경제성장률이 장기적으로는 최대 1.5% 감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외에도 연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는 미국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난민 할당, 기후변화 대책 등에서 회원국 간 연대가 약화되면 추가 탈퇴국이 나올 수 있다. 정부 부채가 많고 EU 수뇌부와의 관계가 좋지 않으며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정당이 많은 이탈리아, 그리스 등이 거론된다. 또 미국이 발을 뺀 중동에서 러시아가 날로 영향력을 확대했듯 유럽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이 떠난 EU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독일과 프랑스의 경쟁 격화도 예상된다.

대(對)EU 무역 의존도가 높은 영국의 손실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수출입의 각각 45%, 53%를 EU에 의존해 왔다. EU 회원국에 정착한 약 220만 명의 영국인, 영국에 있는 약 360만 명의 EU 회원국 국민의 위치를 어떻게 할지도 문제다. FT는 “영국이 미국, 중국 등 강대국 사이에서 홀로 경쟁해야 한다. 영국으로 오는 난민을 벌주기 위해 시작됐던 브렉시트가 해외의 영국인 지위를 난민으로 격하시켰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사회 갈등도 더 커질 수 있다. 대도시 엘리트와 젊은층은 여전히 EU 잔류를 지지한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중북부 주민과 장·노년층은 브렉시트를 반긴다. 29일 브뤼셀 유럽의회 회의장에서도 내심 EU 잔류를 희망했던 제1야당 노동당 의원들은 침울한 표정을 짓고 일부는 눈물을 흘렸다. 집권 보수당, 극우 브렉시트당 의원들은 환호했다.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분리독립 움직임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2014년 부결됐던 분리독립 국민투표를 올해 다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주민은 아예 “독립국 자격으로 EU 회원국이 되자”고 주장하고 있다.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국경을 맞댄 북아일랜드에서도 아일랜드와의 통합 혹은 분리독립을 원하는 무장조직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보수당 정권이 ‘대영제국의 부활’을 외치며 강행한 브렉시트가 결국 영국을 ‘리틀 잉글랜드’로 전락시킬 것이라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 신아형 기자
#브렉시트#합의안#eu총회#영국#보리스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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