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하룻밤 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환자 집계 기준을 바꾸면서 의료계와 보건당국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늦게나마 코로나19 유행 양상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중국이 내놓는 ‘고무줄 통계’를 신뢰할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그동안 외부로 공표하지 않았을 뿐 중국 정부가 정확한 실태를 숨겨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13일 혼란으로 매일 오전 감염자 공식 집계를 발표해온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늦은 오후에야 수치를 내놓았다.
한국 정부는 중국의 확진 환자 급증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존 통계에 잡히지 않은 환자들이 포함돼 ‘착시 효과’가 나타났을 뿐, 신규 환자 발생 추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기존 집계 방식대로 하면 신규 확진자는 1500명가량으로 전날(1638명)보다 오히려 소폭 줄었다. 단, 앞으로 중국 내 숨은 감염자가 더 드러날 가능성은 커졌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2월 말 정점 후 하강’ 등 코로나19 확산세에 대한 국내외 낙관론은 수그러드는 분위기다.
○ ‘숨겨진 감염자’ 얼마나 더 있나
13일 중국 후베이(湖北)성 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12일 후베이성 내 신규 확진 환자는 1만4840명, 사망자는 242명 늘었다. 중국이 리보핵산(RNA) 검사 이외에 의료진 판단과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를 코로나19 확진 기준으로 확대하자, 감염자와 사망자 수가 폭증했다.
문제는 후베이성 당국이 이를 언제부터 파악하고 있었느냐다. 후베이성이 이날 적용한 임상 진단 기준 확대는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가 내놓은 ‘코로나19 진단 방안’(제5판)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이 방안은 4일 발표됐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財新)은 “후베이성이 임상 진단 방식으로 확진 판정을 내린 환자 수를 발표한 것은 이로부터 일주일 후”라며 “그동안 폐렴 증상이 있는 임상 진단 환자가 확진 환자로 계산되지 않았고, 이들 임상 진단 환자의 구체적인 수가 대외에 공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확진 환자 폭증 사실을 알고도 발표를 미룬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중국중앙(CC)TV 등 관영매체들은 전문가들을 동원해 여론 수습에 나섰다. 퉁자오후이(童朝暉) 베이징(北京) 차오양(朝陽)병원 부원장은 “(기존 검사를 통한) 폐렴 진단비율도 20∼30%에 불과하다. 70∼80%는 의료진의 임상 진단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왕천(王辰) 중국공정원 부원장은 CCTV에 “코로나19 진단키트 검사의 정확성은 30∼50%에 불과하다”며 확진 판정 기준 확대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이는 지금까지 후베이성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는 실제의 20∼50%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된다. 새로운 기준으로 확진자를 판단하면 향후 감염자와 사망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국제사회도 중국이 아직도 정확한 감염 실태를 숨겼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역학전문가인 닐 퍼거슨 영국 임피리얼 칼리지 교수는 “중국이 중증환자들에 대해서만 확진 판정을 내리고 있다”며 “실제 사망자와 확진자 수에서 10% 정도만 공식 통계에 포함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정점 시기 예측 불가”
중국의 영향권 안에 있는 한국 보건당국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숨은 감염자들이 드러나면서 중국 내 코로나19 확산세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13일 브리핑에서 “아직 중국에서 매일 약 2000명의 신규 환자가 발생 중이고 경증 환자까지 따지면 규모가 더 크다”며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도 이날 “이번 바이러스는 어떤 방향으로도 진행될 수 있다. 종결을 말하기는 너무 이르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바이러스의 특성상 날씨가 따뜻해지는 3, 4월이면 전염력이 떨어져 진정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동남아시아 지역에도 환자가 많다”며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기온과의 관계를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중국인 유학생들이 대거 입국하는 3월 이후가 국내 코로나19 확장세의 고비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이 아닌 제3국의 감염병 관리 능력이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제2의 우한(武漢)’이 나타날 가능성이다. 전문가들은 중국과 인접한 중앙아시아와 인도차이나반도 국가들을 주목한다.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중국인들이 관광·사업 목적으로 많이 찾는 라오스, 미얀마 등에서 아직 확진환자가 나오지 않았다”며 “신종 감염병을 진단할 의료 시스템을 못 갖춘 나라에서 바이러스가 퍼져 토착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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