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8일(현지 시간) 하루 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1500명 가까이 폭증했다. 봉쇄 조치가 내려진 지역에서는 ‘엑소더스(대탈출)’가 나타나 이탈리아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 봉쇄 지역 주민 탈출 행렬
이탈리아 보건당국에 따르면 이날 코로나19 확진자는 7375명으로 전날보다 1492명 늘었고 사망자는 133명이 증가해 366명이 됐다. 증가 추세로 볼 때 조만간 한국(7478명)보다 확진자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탈리아 정부가 전날 북부 롬바르디아주 등 15개 지역에서 출입제한 행정명령을 발표해 해당 지역민 1600만 명이 사실상 격리됐지만 급증세가 꺾이지 않았다.
문제는 코로나19 급증세 이상으로 ‘사회적 혼란’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북부 최대 도시 밀라노, 관광도시 베네치아 등 다음 달 3일까지 봉쇄령이 내려진 지역 주민들은 정부 발표 전부터 남부지방으로 이동하고 있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가 지방자치단체에 보낸 행정명령 문서가 발표 하루 전 유출됐기 때문이다.
밀라노의 바이러스 전문가 로베르토 부리오니는 “봉쇄 지역에서 많은 사람이 탈출하면서 (감염이 확산되는) 정반대 효과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남북 간 ‘지역 갈등’마저 생기고 있다. 동남부 풀리아주 미켈레 에밀리아노 주지사는 9일 “다시 뒤로 돌아서라. 당신들이 바이러스를 운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이탈리아 정부가 교도소 면회를 금지하자 북부 볼로냐 인근 모데나 교도소에서 폭동이 일어나 6명이 사망했다. 다음 달 3일까지는 모든 가톨릭 예배가 전면 중단된다. 가톨릭 신자가 전 국민의 90%가 넘는 이탈리아로서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 중국인 많고 정부 대응 부실
이탈리아는 주요 7개국(G7) 멤버이자 유럽 4위의 경제대국이지만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높은 환경과 당국의 미숙한 대응이 합쳐져 재앙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현지의 분석이다. 이탈리아에는 중국인 3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북부 패션 도시 밀라노와 섬유 도시 프라토에 몰려 있고 상당수가 위생 상태가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현지 소식통은 “방 하나에 여러 명이 합숙하다 보니 감염이 확산되기 쉽고 정확한 경로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탈리아인 특유의 개인주의 성향은 악재로 작용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까지도 북부 지역의 스키장이 붐비고 밀라노 선술집에서는 잔치가 열렸다. 정부의 경고에도 상당수 이탈리아인은 ‘내 생활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평소대로 했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2.6%(2018년 기준)로 일본 다음으로 높다. 면역력이 약한 노인이 많다 보니 확산이 더욱 급속히 이뤄졌다. 설대우 중앙대 약학과 교수는 “이탈리아는 의사와 간호사 수가 적고 의료 접근성도 떨어지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탈리아 당국은 지난달 말까지는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방역을 강화하고 하루 최대 5000명인 검진 횟수를 더 늘리면 확산은 막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이달 들어 전국으로 퍼졌고 최초 감염자인 ‘0번 환자’의 소재를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확산 초기 중국과의 연관성만 찾느라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 유럽 및 중동 확산세 이어져
9일 프랑스와 독일의 확진자 수는 각각 1209명. 1151명으로 전날보다 각각 260명, 351명 늘면서 1000명을 넘어섰다. 스페인(911명), 스위스(332명) 등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코로나19 확산세가 빠르다. 마르셀루 헤벨루 드소자 포르투갈 대통령은 8일부터 관저에서 자가 격리를 시작했다. 3일 대통령궁을 방문한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온 탓이다.
안드레이 바비시 체코 총리는 이탈리아 정부에 자국민의 유럽 여행을 금지시키라고 요구했다.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등은 이탈리아 경유 입국자에 대한 검사를 강화하기로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 민주적이라고 자부해온 유럽 국가들이 폐쇄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란에서 7161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는 등 중동 지역에서도 코로나19가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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