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 충격이 예상보다 깊어지면서 세계 경제가 단기간 내 반등할 수 있다는 ‘V자 회복론’이 힘을 잃고 있다. 짧은 경기 침체 후 반등을 예상했던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도 2주 만에 신중론으로 돌아섰다. 코로나 사태 초반에는 경제 회복 시점에 대해 경제학계의 의견이 엇갈렸지만 미국, 일본 등 주요국의 상황이 더 나빠지면서 비관론에 무게가 더 실리는 분위기다.
● 주요국 충격 확산에 경기 비관론 커져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버냉키 전 의장은 7일(현지 시간) 브루킹스연구소 주최 웹 세미나에서 “(경제의 반등이) 신속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기존의 전망을 뒤집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가 다시 시작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기 전까지는 경제가 정상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꽤 점진적으로 활동을 재개해야 하고 이후 경제 활동이 다시 둔화되는 기간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25일 미국 CNBC 인터뷰에서는 “가파르고 짧은 침체 이후 상당한 반등이 있을 것”이라며 ‘V자’형 회복을 예상한 바 있다. 하지만 ‘코로나 셧다운’의 충격으로 3월 중순 이후 대량 실업이 이어지고 위기의 파장이 예상보다 커지자 견해를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버냉키 전 의장은 2분기(4~6월) 미국 경제가 연율 기준으로 30% 이상의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봤다. 다만 그는 “1, 2년간 모든 것이 잘 된다면 우리는 상당히 나은 위치에 있게 될 것”이라며 12년간 진행됐던 1930년대 대공황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의 후임자인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도 즉각적인 경기 회복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옐런 전 의장은 6일 언론 인터뷰에서 향후 미국 경제가 V자형 반등이 가능한지에 대해 “경제가 셧다운 된 기간에 얼마나 피해를 보느냐에 달려있다. 더 많은 피해를 볼수록 U자형 반등을 볼 가능성이 크고 L자형이라는 더 나쁜 것도 있다”고 했다. U자는 일정 기간 침체가 이어지다가 회복하는 것이고, L자는 한번 경기가 꺾인 뒤 상당기간 침체가 계속되는 것을 뜻한다. 그는 “국내총생산(GDP)이 적어도 30% 감소하고 실업률이 12, 13%로 오를 수 있다”고 했다.
● 글로벌 기업 절반 “내년까지 침체” 예상
경제학계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세가 정점에 이르렀다는 기대감에 글로벌 증시가 최근 다소 반등하고 있지만 산업계의 피해는 그보다 훨씬 오래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케네스 로고프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항공, 호텔, 금융 등 기업의 지속적 피해가 너무 크다”며 V자형 반등 가능성을 일축했다. 마크 잔디 무디스애널리틱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U자형보다도 회복이 상당히 더디게 진행되는 ‘나이키 로고 모양’의 회복세를 예상했다. 대표적인 비관론자로 꼽히는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경제가 I자형으로 수직 낙하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글로벌 기업의 경영진들도 경기 회복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봤다. EY글로벌회계컨설팅법인이 전 세계 기업의 경영진 2900여 명을 설문한 결과 절반 이상(54%)이 내년까지 성장이 둔화한 뒤 경기가 회복하는 U자형 회복세를 예상했다. 올 3분기(7~9월)부터 경기가 반등하는 V자 회복을 기대한 응답은 38%에 그쳤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글로벌 투자은행(IB) 9곳의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0.9%로 집계됐다. 직전 전망치보다 3.5%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실업대란 가능성이 커진 점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사태로 미국에서만 약 4700만 명이 실직해 실업률이 32.1%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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