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 유가전쟁 일단락
멕시코 반대에 합의 난항…美 나서기로
유가 상승은 미지수…"감산량, 너무 적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OPEC 비회원 산유국 연합체인 OPEC+가 12일(현지시간) 하루 970만배럴 감산에 합의했다. OPEC+가 결정한 감산 규모 중 가장 큰 수준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원유 수요가 폭락한 상황에서 국제유가를 떠받치기에는 부족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CNBC,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OPEC+가 이날 긴급 회의를 통해 하루 970만배럴 감산 합의에 도달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OPEC+ 감산 합의가 불발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유가 전쟁에 돌입한 지 한 달 만이다.
하루 970만배럴 감산은 5월1일 시작되며 6월까지 이어진다. 이후 감산량은 7월에서 올해 말까지 하루 800만배럴, 2021년 1월~2022년 4월 하루 600만배럴로 줄어든다.
앞서 9일 OPEC+는 10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를 진행했지만 멕시코의 막판 반대로 합의에 실패했다. OPEC+는 애초 세계 공급량의 10% 수준인 하루 1000만배럴 감산 합의 직전까지 갔지만 멕시코가 반기를 들었다. OPEC+는 멕시코에 하루 40만배럴 감축을 요구한 반면 멕시코는 하루 10만배럴을 감산할 용의가 있다며 맞섰다.
10일 열린 주요 20개국(G20) 에너지장관 회의에서도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참가국 모두 시장이 안정돼야 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구체적인 감산 수치를 논의하기는 꺼렸다.
OPEC+의 이번 합의에 따라 멕시코는 하루 10만배럴을 감산해야 한다. 미국은 멕시코를 대신해 추가 감산에 나선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멕시코의 감산 할당량 부족분인 25만~30만배럴을 메꿔줄 예정이며, 멕시코가 나중에 이를 갚을 것이라고 밝혔다.
라이스타드 에너지의 페르 마그너스 니스빈 분석가는 CNBC에 이번 합의가 “최소한 세계 경제와 에너지 산업을 위해 일시적인 도움은 될 것이다. 시장이 필요로 하는 데 비해 감산 규모가 작다 해도 최악의 상황은 일단 피했다”고 밝혔다.
사우디와 러시아의 유가 전쟁을 중재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서 “OPEC+가 큰 합의를 마쳤다. 이는 미국에서 수십만 개의 에너지 일자리를 구할 것”이라며 흡족한 반응을 나타냈다.
또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사우디의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을 거론하면서 “백악관 집무실에서 방금 그들과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유가 하락은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에도 큰 걱정거리였다. 1월 정점 대비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각각 53%, 63% 내렸다. 이처럼 유가가 폭락하자 미국 에너지 기업의 수익악화 및 줄도산 우려가 커졌다.
WSJ은 미국이 OPEC+회의에 참여하지 않지만 최근 며칠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 러시아, 멕시코 측과 대화해왔으며 OPEC+의 이번 합의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일부 공화당 상원의원도 11일 사우디 에너지 장관과 2시간 동안 통화하면서 감산에 합의하지 않으면 미국과 사우디 간 오랜 동맹 관계가 손상된다고 경고했다. 케빈 크래머 상원의원은 “우리 군대가 사우디를 보호하는 동안, 사우디는 한 달 넘게 미국 석유업자들과 전쟁을 벌였다. 친구는 그렇게 대하는 게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유가가 오를지는 미지수다. WSJ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원유 수요가 하루 최대 3000만배럴 감소할 전망인 상황에서 일부 분석가들은 합의가 너무 늦었고 규모도 너무 적다고 말했다.
아울러 OPEC+에 참여하지 않는 미국의 경우 민간 기업에 감산을 강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미국에서 가장 큰 석유 단체인 미국석유협회(API)는 “팬데믹(세계적인 대유행병)에 따른 에너지 수요 감소에 맞춰 공급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OPEC+가 약속대로 감산에 나설지를 두고도 의구심이 제기된다. 독립 분석가 고라브 샤마는 BBC에 “러시아는 지난해 OPEC+ 합의에 따르는 데 매우 부진했다. 그래서 시장은 발표된 (감산 합의) 수치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크래머 의원은 이날 OPEC+가 합의를 이행하는지 주시하겠다면서 “모든 과정을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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