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사전 검사를 거치지 않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항체 검사기구에 대한 판매를 허용하며 조기 경제정상화를 압박하고 있다. 검사의 신뢰성 및 코로나19 재확산 우려가 높은데도 정부가 ‘항체검사 확대’만 외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늑장 검사로 질타 받았던 미국 정부가 이번에는 ‘과속 검사’로 도마 위에 올랐다.
● 시판 90개 기구 중 FDA 승인은 4개뿐
항체 검사는 코로나19 감염 여부가 아닌 항체 등 면역 체계가 만들어졌는지를 판단하는 과정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후 경제정상화 시기 및 단계를 판단할 때 주요 근거로 쓰인다. 부정확한 검사 결과로는 누가 면역력을 갖게 됐는지, 재발 위험은 없는지 등을 판단하기 어렵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 식품의약국(FDA)은 지난달 중순 신속한 항체 검사를 위해 90개가 넘는 검사기구의 판매를 허용했다. 이중 FDA의 공식 승인을 받은 업체는 단 4곳. 나머지는 제조업체가 자체 검사를 거친 뒤 FDA에 통보만 했다.
특히 손가락을 찔러 혈액을 채취한 뒤 집에서 항체 형성 여부를 손쉽게 판단할 수 있는 개당 60~115달러의 ‘신속 검사기구’의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항체가 없는 데도 항체가 생성됐다고 판정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텍사스주 라레도에서 일부 기구의 신뢰성을 조사한 결과 약 20%만 정확도가 입증됐다. 90%가 넘는 정확도를 자랑한다던 업체 측 주장과 달랐다. 심지어 FDA 승인을 받은 제품에서도 5%의 오류가 발생했다. 실험실 검사를 거쳐야 하는 더 정교한 검사 기구는 당장 수요를 따라갈 만큼의 대량 생산이 어렵다.
시판 중인 많은 검사 기구는 주로 중국과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생산됐다. WP는 영국 정부가 최근 중국에서 2000만 달러어치의 검사 기구를 수입했지만 상당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켈리 브로블레스키 미 공중보건진단검사실협회(APHL) 국장은 “부정확한 검사를 많이 하면 검사를 안 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코로나19에 관한 새로운 검사 기구는 연구용으로만 쓰라”고 권했다.
● 트럼프 “항체 검사 확대” 고수
상황이 이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검사 확대를 거듭 압박하고 있다. 그는 17일 기자회견에서 “항체 검사는 누가 훌륭하고 아름다운 면역력을 확보했는지 보여줘 미국인들을 일터로 돌아가게 하는 우리의 노력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기업들도 동참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19일 “더 많이 검사할수록 더 많이 경제를 개방할 수 있다. 이번 주부터 대규모 항체 검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주는 이번 주 3000명을 검사한 뒤 이를 하루 최대 10만 명까지로 늘릴 계획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라레도 시(市) 역시 이미 2만 명의 주민을 대상으로 검사를 마쳤다.
미 프로야구(MLB) 사무국과 선수들도 조만간 검사를 받기로 했다. 골드만삭스와 트위터 같은 대기업, 미 프로농구(NBA) 등도 항체검사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검사를 받은 캘리포니아주 광고회사 임원 딘 칼라스 씨는 “내게 항체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밖에서 좀더 용감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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